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선뉴스=정혜인 기자ㅣ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다음 대선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두렵다”며 “이는 우리 지도자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대선에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으로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지원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백악관 생활을 하는 동안 높은 지지율을 자랑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다민족 혈통을 지닌 아이
버락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백인이다. 그래서 첫 흑인 대통령이 아니라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대부분 본인의 인종 정체성을 흑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흑인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기에도 흑인에 가깝고, 스스로 정체성을 이처럼 생각하고 있다. 다만, 부모님 이혼 후 백인 어머니와 백인 외조부모의 양육을 받아, 그 점이 다른 이들의 시선에 더 영향을 미쳤다.

법학 공부와 로스쿨 근무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미디어]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미디어]

20대 초반, 오바마는 시민단체 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주민 권리 조직, 직업 훈련 프로그램, 대학 예비지도 프로그램 설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8년이 끝나갈 때쯤,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입학해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대학교 재학 중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법학대학원 대표 간행물 ‘하버드 로리뷰(Harvard Law Review)’의 편집장에 당선됐는데,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당시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1992년에 결혼하고 나서는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서 12년 동안 헌법학 교원으로 일했다.

‘희망’과 ‘변화’의 상징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피디아]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피디아]

오바마의 정치 경력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시작되었다. 1996년 오바마는 앨리스 팔머 의원의 뒤를 이어 일리노이주 의회 상원에 선출되었다. 그 뒤에도 의회 상원에 재선출되었고, 위원회 의장을 맡은 적도 있었다. 몇 년이 더 지나고 2004년 상원 의원에 선출되며 정치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했던 건 2007년 2월 10일이었는데, 이후의 연설에서 신뢰를 강조하며 ‘희망’과 ‘변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젊은 층과 사회적 소수 계층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무후무한 인기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피디아]
버락 오바마 [사진/위키피디아]

오바마 전 대통령의 8년 임기 중 최고 지지율은 67%, 평균 지지율은 48%에 달했다. 임기 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당시 취임을 앞둔 트럼프의 지지율 37%를 훨씬 뛰어넘는 55%의 결과가 나왔다. 그의 경제적·정치적 공과에는 의견이 갈렸음에도 이러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인간미가 컸기에 가능했다. 높은 자리에서도 오바마는 머리를 만져보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거리낌 없이 머리를 숙이고, 백악관 청소부와 스스럼없이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버락 오바마(좌), 빌 클린턴(우) 미국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버락 오바마(좌), 빌 클린턴(우) 미국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서인지 대선을 앞두고 그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다음 달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블록버스터급 모금행사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오바마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행보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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