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양원민 기자ㅣㅇㅇ김씨, ㅇㅇ파, ㅇㅇ대손 등 자신의 ‘뿌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가문의 가계 기록이자 역사적 사실들을 규명하는 데도 사용되는 족보, 족보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족보’는 한 가문(동족)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한 가문의 혈연관계를 알기 쉽도록 대부분 부계 중심으로 정리한 도표 형식의 책이며, 가문의 단합과 조상에 대한 공경 등 유교적인 가족관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족보는 동족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에, 세로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 및 가족 구성원을 알 수 있고, 가로로는 현재의 동족 및 상호 간 친소원근(親疎遠近, 멀고 가깝고, 친밀하고 친밀하지 못한 사이)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족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족보의 형태가 등장했다. 고려시대의 묘지명 등 사료에 의하면 소규모의 계보는 이미 고려시대 이래로 귀족 사이에서 작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나의 동족 또는 분파 전체를 포함하는 족보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했다. 1423년(세종 5)에 간행된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영락보 永樂譜>가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 있다.

족보의 조직이나 구성, 내용 등은 일정하지 않다. 종족 또는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다르기도 하며, 한 족보에서도 가족 상황을 기재한 내용이 자세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족보 편집은 대개 일정한 원칙과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족보 일반의 의의와 그 일족의 근원, 내력 등을 기록한 서문이 있다. 이 글은 보통 일족 가운데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시조의 역사나 전기를 기록한 문장이 들어가고 시조의 묘나 발상지 등이 표기된 도표가 들어간다. 끝으로는 족보의 중심이 되는 계보표가 기재된다. 

계보표는 세대 순으로 세로로 배열하고, 같은 항렬은 가로로 배열해 동일 세대임을 표시한다. 기재된 사람은 사람마다 이름·호(號)·관직·덕행(德行)·저술(著述) 등을 기록하며 자녀에 대해서는 입양 관계, 적서의 구별 및 남녀의 구별 등을 적는다.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아들, 딸(사위)을 출생 순위로 기재하였으나, 중기·후기로 내려오면서 아들을 먼저 기재하고 딸(사위)을 나중에 기록하는 선남후녀(先男後女)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족보는 한 성씨의 역사 기록이고 가계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사문서이지만 공문서의 성격도 지닌다. 족보의 기록을 통해 자기 조상의 업적을 배우고 가족 간의 협동과 상부상조 등의 역할을 하는 면에서는 단순한 가계 기록 이상의 사회통합적 순기능도 지닌다. 나아가 동성불혼의 판단자료가 되기도 하고, 여러 족보기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구조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과거의 조상을 미화시키고, 없는 조상을 일부러 만들어 넣는 등 가짜 족보를 만드는 일도 있는 등 폐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특정 성씨들은 여전히 신분 관념의 상징으로 잔존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최근에는 족보에 대한 개념과 의미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작성 자체를 하지 않거나 갖고 있는 가족이나 가문들도 많지 않다. 하지만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인 지금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뿌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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