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박진아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ㅣ카드뉴스로 떠나는 여행. 오늘의 랜선 여행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으로 떠나보려고 한다.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태양왕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루이 14세의 과시욕의 끝을 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궁전을 건설하기 위해 무려 25,000~36,000명의 인부가 매년 동원됐고 궁전 규모는 우리나라 여의도의 3배 정도 된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다. 그러다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했다. 또 여기에 분수를 만들기 위해 몇 개의 강줄기를 바꾸고, 거대한 펌프를 만들어 센강의 물을 길어다 부었다고 전해진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루이 14세가 이렇게 거대한 궁전을 건설한 목적은 다름 아닌 절대왕정의 확립 때문이다. 베르사유 건설은 일종의 천도(遷都)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오래된 도시인 파리는 여러 세력의 입김이 닿고 있었으며 부르주아나 귀족들의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베르사유는 신도시였기에 왕실 이외에는 어떤 지역 권력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1682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긴 후 매일같이 수백 명의 귀족들이 모였고 루이 14세는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이것은 루이 14세에게 언제 반기를 들지 모르는 귀족들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나약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즉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은 단순한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닌 루이 14세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이 강하다 보니 실용적으로 편안한 공간은 아니었다. 궁전에는 물이 없어 센강에서 수차를 이용해 물을 퍼 와야 했고, 대리석 자재로 만들어진 건물이었기에 겨울이 되면 궁전 내의 온도는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궁전의 화려함 속에 루이 14세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깃든 ‘베르사유 궁전’.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직접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아침 일찍 개장 시간에 맞춰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는 인기 관광지라 그런 것. 랜선으로나마 베르사유 궁전으로 떠나보며 우리 삶의 힘든 순간에 작은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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