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면 유독 친지 가족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습니다. 손주가 태어나면 태어난 손주의 성장과정이 보이는 사진들도 눈에 띄죠. 그럼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땠을까요?

사진기가 발명하기 전 오래된 과거에는 초상화가 ‘사진’의 역할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왕궁이나 귀족들에게 초상화는 자신이나 가족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죠.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The Infanta Margarita in a Blue Dress, 1659) (출처/위키미디아)

다음 그림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The Infanta Margarita in a Blue Dress, 1659)를 살펴볼까요?

그림의 주인공 마르가리타 공주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 오스트리아 출신 둘째 왕비 마리아나 사이의 첫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리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의 다음 황제가 될 레오폴드의 유력한 신붓감 중 하나로 그녀의 초상화는 그녀가 3세일 때부터 자주 제작되었습니다. 

제작된 초상화는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왕궁으로 보내지곤 했는데요. 합스부르크 왕가는 제작된 초상화를 통해 공주들이 외형적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마르가리타의 신랑이 될 레오폴드의 아버지이자 마르가리타의 외조부이기도 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드 3세는 스페인 왕궁에 공주의 초상화를 보내달라고 거듭 요청하였습니다. 손녀가 보고 싶은 할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이죠. 이때 황제가 보았던 것이 스페인의 대표 궁중화가 벨라스케스가 제작한 3살의 마르가리타 초상화였습니다.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는 1654년부터 1659년까지 총 3점이 비엔나로 보내졌는데요.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는 1659년의 작품으로 당시 8살이었던 마르가리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출처/위키미디아)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평생에 걸쳐 국왕 펠리페 4세만을 섬긴 스페인의 대표적인 궁정화가입니다. 그는 기존의 왕족 초상화와 달리 무조건적인 미화를 배제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했고 그의 그림이 펠리페 왕의 눈에 들면서 궁정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죠.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는 관찰 대상의 개성은 물론 그 내면까지 화폭에 담았는데요.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에서도 공주의 어린 아이다운 천진한 모습과 생동감, 왕족으로서의 우아함이 느껴집니다.

마르가리타 공주가 입은 볼륨감 있는 푸른색의 비단 드레스는 1640년대부터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하던 디자인이었으며 옷과 동일한 푸른색의 화려한 장신구로 머리와 가슴 부분도 장식하였습니다. 왼손에 쥔 커다란 머프(여성용의 원통형 토시)는 그녀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받은 선물로서 그림을 통해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또한 공주를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에 배치한 거울과 벽에 붙여 놓는 높은 테이블, 그리고 그 위의 청동 사자로 장식된 시계 등은 그녀가 왕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는 당시의 스페인 왕궁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예술적 가치 그 이상이죠. 멀리 떨어져서 자라는 손녀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외할아버지 페르디난드 3세에겐 벨라스케스가 보내는 초상화가 예술적 가치 그 이상의 단비 같은 소식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처럼 말이죠. 이 그림을 계기로 우리의 소식을 늘 기다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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