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일본은 갑오개혁(1894)을 통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요동반도를 할양(시모노세키 조약, 1895.04.17.) 받아 만주를 시작으로 대륙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낀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요동반도를 청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 ‘삼국간섭’을 시도하게 되었고 내정 간섭에 불만을 가진 고종과 명성황후는 친 미, 친 러시아 성향의 김윤식, 이범진 등으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 친일 세력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일본은 삼국의 압박에 의해 결국 요동 반도를 다시 청에게 돌려줘야 했고 조정도 친 러시아 내각을 펼치면서 점점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이에 친일세력인 박영효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이 되어 일본으로 달아났고 이로 인해 친일파는 더욱 세력이 줄어들었다. 

친 러 성향을 띠는 조선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일본은 무과 출신인 미우라 고로를 주한일본공사로 파견하였고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개혁을 했던 부분을 복구 하는 조선을 보며 친 러 세력의 리더인 명성황후를 시해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미우라 고로는 흥선대원군을 옹립하여 입궐 할 때 호위군으로 낭인을 심어 놓았고 조정이 일본인 교관이 훈련시킨 2개 대대의 훈련대의 해산을 통보하고 친러 인사를 궁내부대신으로 임명하자 명성황후 시해를 결단 내린다.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새벽, 일본인 자객들은 서대문을 거쳐 미리 포섭된 우범선, 이두황이 지휘하는 조선 훈련대와 합류하며 광화문을 통과하게 되었고 결국 궁에 입궐하여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이들을 저지하려던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을 살해한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타국의 국모를 살해한 일본. 일본의 잔학한 만행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목격한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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