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연선]

▶마하트마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출생-사망 / 1869.10.2 ~ 1948.01.30

▶국적 / 인도

▶활동분야 / 사상, 민족운동

비폭력과 평화주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마하트마 간디다. 마하트마 간디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끈 인도 건국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간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인도 서해안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던 간디는 수줍음이 많던 아이였다. 싸움을 싫어한 그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꼭 도와주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19세가 되던 해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영국의 수탈이 심해지자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영국에서 단 한 번만에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인도로 돌아온다. 하지만 변호사 생활이 여의치 않았고, 어느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 계약을 받게 된다. 이후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나 흑인과 인도인에 차별하던 백인들을 만나게 된다.

-간디, 영국에 맞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차별당하는 인도인들을 본 간디는 영국의 차별에 맞서기 시작했다. 영국의 허락 없이는 넘어갈 수 없던 트란스발 국경을 약 3천 명이 넘는 인도인들과 함께 넘어가면서 영국의 인종차별법을 고치게 된다.

46세가 되던 해 그는 인도로 돌아왔고 세계1차대전 이후 독립을 시켜주겠다는 영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물레로 직접 옷감을 짜 입으며 영국의 물건을 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영국만 만들 수 있던 소금을 인도인들과 함께 만들며 소금법을 만들었다.

이렇게 폭력 없는 운동으로 인해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하게 된다.

-간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을 멈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인도,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열되어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폭동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간디는 이런 종교적인 문제로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단식에 돌입한다.

간디의 뜻을 알고 있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은 5일 후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하고 간디는 단식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20일 후 힌두교 광신자 한 명의 총에 저격당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비폭력으로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싸우던 마하트마 간디. 간디의 비폭력과 평등사상은 이후 마틴루터킹과 넬슨만델라 등에 영향을 끼치고 인도에서 공경받는 위대한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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