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지난달 26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주역 민 꼬 나잉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 그대로, 여러분의 지지가 저희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고 밝히며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한국인들의 연재와 지지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민 꼬 나잉은 미얀마 ‘8888항쟁’을 촉발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다.

‘8888 항쟁’은 지난 1988년 8월 8일 미얀마에서 랑군(양곤)의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반군부 민중항쟁이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미얀마의 민중들은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군사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항쟁을 일으켰다.

1962년 이래로 버마(현 미얀마)는 네 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네 윈은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성립시키고 경제를 국유화시키며 경제적 자급자족 정책을 펼쳤다. 결국 버마는 세계 경제에서 고립되게 되었고 아편 밀거래 등을 묵인하는 등 경제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다 네 윈은 1987년 9월 군부는 버마의 일부 통용지폐를 회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학생들은 군부의 정책에 반대한다. 또한 국민들도 군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8888항쟁으로 민주화 시위는 더 격렬해졌다.

네윈 정권은 중국의 천안문 6.4 항쟁처럼 군대를 동원해서 잔혹하게 시위대를 진압하였으며, 3,000여명의 시민들이 군에 의해 총에 맞아 사망했다. 후임 셰인 르 윈의 집권 후 군부는 더 강경해졌고 이러한 참상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들의 군사정권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네 윈도 무사하지 못하여 소 마웅 장군 등이 조직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세력이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네 윈을 강제 퇴진시켰고, 민중항쟁은 1988년 9월 18일 종료되었다. 

이들은 군사정권을 퇴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총선에서 친군부 세력이 참패하자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권을 독차지했다. 새로운 군사정부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군부독재를 시작한 것이다. 2007년에도 승려들을 필두로 민주화운동을 일으켰지만 이마저도 유혈진압으로 실패했다.

미얀마에 자유총선이 다시 치러질 때까지 22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것마저 반쪽짜리였으며 결국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2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미얀마 국민들은 군부의 지속적인 독재 야욕, 반민주적인 행태, 부정부패 등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반발하며 항쟁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988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군부에 저항했던 반군부 민중항쟁 ‘8888항쟁’.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미얀마 군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감행하는 등 시민들의 사망자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향해 민주화를 먼저 쟁취한 모습을 희망의 상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가운데 부디 더 이상 죄 없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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