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4·19혁명을 전후하여 불기 시작한 민족주의 열기를 박정희 정권은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 교육, 문화 전반에 ‘주체적 민족사관’을 강조하고 이를 교육이념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제정(1968.12.5.)하였다.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393자로 이뤄진 국민교육헌장은 각종 국정교과서의 첫 장에 인쇄되어 학교 교사와 학생은 물론 회사원과 공무원, 학부모 등 모든 국민들이 암기해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은 국가와 국가발전이 개인보다 우선한다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국민들이 이 땅에 태어나는 이유도 국가를 위해서이고 반공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내용은 민주주의에 역행할뿐더러 박정희 정권의 독재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박정희 정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따라서 이를 문제삼거나 비판하는 교수들은 교단에서 쫓겨났으며 남아 있는 교수들도 지도교수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감시하고 시위를 막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 

이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송기숙 전남대학교 교수 등 11명은 “국민교육헌장은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제정경위 및 선포 절차가 미주 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며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의 철폐’, ‘학원과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며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1978. 6.27) 한다. 

성명서 발표 직후 교수 11명 전원이 당시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었고 이에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교수들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 해직되었고 379일 동안 불법 구금되었다. 또한 시위학생 가운데 30명 역시 구속, 제적, 정학 처분을 당하는 등 처절한 응징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고 새로운 군부가 집권했지만 국민교육헌장은 계속 되었고 1993년까지 매년 교육부 주관으로 관련 기념식이 열리다가 1994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전체주의 강조 등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기념행사도 폐지되었으며 2003년 선포 기념일마저 삭제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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