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2 부마항쟁과 유신 체재의 종말
EP.212 부마항쟁과 유신 체재의 종말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8.12.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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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유신헌법으로 인해 6년 만에 총선이 치러지게 되면서 큰 쟁점 없이 선거는 과열이 되었다. 이 때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금품들이 동원되었고 이로 인해 ‘총화’, ‘반찬값’이라는 은어와 ‘효도관광’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여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저분한 선거가 치러진 결과 공화당 68석, 신민당 61석, 통일당 3석, 무소속 11석으로 나타났다. 선거 자체로는 공화당이 승리하였지만 총 투표수에서는 신민당이 1.1%가 우세해 사실상 신민당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기 6년을 마친 박정희는 다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런 행태로 인해 박정희의 대통령 집권은 그야말로 거리낌 없는 종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979년 5월 말, 야당인 신민당 당수로 선출된 김영삼 총재는 YH 무역사건(1979. 8. 11)을 계기로 적극적인 반정부극한투쟁을 선언했다. 그러자 국회는 이 해 10월 김영삼을 제명하는 조치를 취하기까지 한다. 

김영삼 총재의 제명 등 유신정권의 압정은 10월 부마항쟁을 발생시켰고 이것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에 걸친 정부의 폭력대치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신정권은 10월 18일 즉각적으로 부산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와해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학생과 시민의 투쟁은 더욱 거세졌으며 마산을 시작으로 하여 그 세력은 크게 커져갔다. 

이 사건으로 국내외 여론의 지탄은 더욱 높아졌고 마침내 부마사태(부산 마산)로 불리는 대규모 저항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박정희 정권은 원래 하던 대로 부마사태 역시 폭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신정권의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1979년 10월 26일, 청와대 부근의 궁정동에서 열린 정부고위층 만찬장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여 사망하는 10.26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써 박정희 시대는 18년 만에 종말을 고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임기 중에 저격당하여 사망함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종신 집권에 대한 꿈은 이루게 되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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