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김미양]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 중 인터넷 회선 감청에 관한 부분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해당 조항은 '패킷 감청'을 가능케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으로,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패킷 감청이란 심층패킷분석(DPI, Deep Packet Inspection) 기술을 이용해 인터넷 회선을 통해 이동하는 모든 정보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감청을 말한다. 패킷 감청은 해당 인터넷 회선을 통해 흐르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데이터 전송 단위) 형태로 수집되어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청이나 감청보다도 그 범위가 광대하다.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은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용의자가 보내거나 받은 우편물 및 전기통신에 대해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해당 조항은 범죄수사를 위해서 수사기관이 일정한 기간 동안 감청을 할 수가 있다는 근거 조항이 된다. 하지만 주로 전화 감청의 근거로 쓰이던 해당 조항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재는 인터넷 회선에 대한 감청의 근거조항으로도 쓰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입증한다며 패킷 감청을 벌여왔다.

문제는 그 조항을 인터넷 회선 감청에 쓰게 되면서 아무런 통제장치 없어 무분별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교사였던 고 김형근 씨는 지난 2007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청 수사대로부터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압수 수색 당했다. 당시 국정원은 재판에서 그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패킷 감청을 진행했다.

이에 2011년 3월 김 씨가 패킷 감청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5년 사이 김 씨는 누군가로부터 24시간 감시당한다는 생각에 휴대전화조차 쓰지 않았고,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간암으로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헌재는 청구인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패킷 감청의 위헌 여부 판단 없이 심판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이후 김 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인터넷 회선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패킷 감청을 당한 목사 문 씨가 2016년 3월 같은 취지로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리고 패킷 감청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헌재는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인한 인터넷 회선 패킷 감청으로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자료가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헌재는 메신저와 e메일, 인터넷 전화 등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의 패킷 감청은 단순한 통신 감청 범위를 넘어 범죄 수사와 상관없는 정보까지 수사기관에 제공되고, 본래 허가받은 목적 범위 안에서만 사용되는지 혹은 수사가 장기화할 경우 감청이 언제 어디서 진행됐는지 그 사실조차 알기 힘들기 때문에 개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해당 법 조항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률적 근거 자체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 2020년 3월31일까지는 효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따라서 효력 상실 전까지 국회가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그 효력을 상실해 사라지게 된다. 패킷 감청이 일정한 규제를 갖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등장할지, 역사와 함께 사라질지, 선택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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