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이연선]

▶ 다이안 아버스 (Diane Arbus)
▶ 출생-사망 / 1923년 3월 14일 - 1971년 7월 26일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사진작가

미국의 여류 사진작가로 <보그>, <하퍼즈바자> 등의 잡지사에서 활동하다가 후에 소외된 사람들에 매료되어 거인, 난쟁이, 동성애자, 여장남자, 지적장애인 등의 사진을 찍어 주목받았다.

-어릴 적부터 빛나던 예술적 재능
뉴욕에서 손꼽히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다이안 아버스는 1남 2녀 3남매의 둘째이자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센트럴파크 웨스트 거리에 위치한 에티컬 컬처 스쿨(Ethical Culture School)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그녀는 어휘력, 읽기, 드로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과제물을 통해 일반 학생들과 비교되는 색감이나 사물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 등 예술적 재능을 선보였다.

- 연인이자 사진 인생의 멘토(mentor)인 앨런과의 만남
다이안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던 ‘앨런 아버스’와 14살에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눴다. 그녀를 부유한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어 하던 부모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앨런과 4년의 열애 끝에 18살에 그와 결혼을 했다. 이후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진작가이던 앨런에게 카메라 잡는 법 등 세세한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으로 금세 사진을 배운 그녀는 이후 앨런과 ‘다이안 & 앨런 아버스’라는 이름의 사진 사업을 시작하고, <보그>, <하퍼스바자>, <글래머> 등의 유명 패선 잡지사와 일하며 성공적인 패션 사진가가 된다.

-‘상업과 순수’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별
패션 사진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다이안은 곧 상업 사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본래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남편 앨런은 상업 사진을 찍는 것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에서 시작된 둘의 의견 충돌은 시간이 갈수록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결혼 생활 열여섯 해가 되던 해, 부부는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본격적인 순수 사진작가로 전향하며 사진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괴짜 찍는 사진작가’를 탄생시킨 ‘리제트 모델’과의 만남
앨런과 이별한 후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찍기 위해 홀로서기를 한 다이안은 미국의 사진작가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을 만나면서 자신이 찍을 사진의 방향을 찾게 된다. 그녀는 리제트의 가르침 하에 사진을 찍는 형식을 이어받았는데, 이는 인물들을 프레임 중앙에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사진의 모델에게 움직임을 멈추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게 하여 진지함이 묻어나도록 했다.

한편, 다이안은 리제트에게 카메라 기술 외에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까지 전수받았다. 리제트는 주로 상처받은 인간의 고뇌를 주제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러한 성향을 이어받은 그녀는 기형아, 거인, 난쟁이, 동성애자 등 예술에서 금기시되던 소외된 인물들의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괴짜 찍는 사진작가’라는 호칭과 함께 예술 사진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 ‘최후의 만찬’과 개인전
예술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쯤, 친구이던 알렉스와 관계가 복잡해지고 별거를 하고 있던 그녀의 남편 앨런 또한 연하의 여배우와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 이후 다이안은 예민함과 우울함이 심해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최후의 만찬’이라는 글귀를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지1년 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그녀의 개인전이 개최되어 수많은 관객이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녀를 추모했다.

다이안 아버스는 자신이 찍은 소외된 사람들을 “상처를 극복해 낸 강한 존재들”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의 숭고함에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비록 자신에게는 힘을 쓰진 못했지만 그녀가 찍은 작품은 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