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0 국내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키워드한국사]
EP.150 국내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키워드한국사]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7.10.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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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수모에 대항하여 국내에서 독립운동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제가 조직을 결사 하는 것을 감시, 금지시켰기 때문에 비밀결사가 조직되었다. 

국권이 피탈되자 많은 의병들이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의병들은 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여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으며 국내에 남은 의병들은 지속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항일 비밀결사가 조직되어 군자금을 모으거나 친일파를 처단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의병 전쟁을 계승하려는 조직들은 다시 대한제국의 왕권을 회복하자는 의미인 복벽주의에 바탕을 두고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계획했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대한독립의군부(1912), 선명단(1915), 민단조합(1918)이 있었다. 특히 독립의군부는 유생 의병장 출신의 임병찬과 호남 척사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하였는데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계획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활동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복벽주의가 아닌 공화주의를 표방한 조직으로는 송죽회(1913), 조선국권회복단(1915), 대한광복회(1915)가 있었다. 송죽회는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와 학생으로 구성된 여성 비밀 결사조직으로 여성 계몽과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 운동을 후원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조선국권회복단은 이시영 등이 단군신앙을 바탕으로 조직한 비밀결사 단체였으며 대한 광복회는 풍기 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을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만들어진 단체로 김좌진, 박상진 등이 주도하였다. 대구에서 결성된 가장 전투적인 단체였으며 경상도에서 충청도, 경기도 전라도, 평안도 등지로 확대 하여 200여명에 달하는 회원을 결성할 수 있었다. 

광복회는 중국 신해혁명의 교훈을 강조하여 독립운동을 통한 국권 회복과 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하였고 국내 100여 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무기를 준비했다. 또한 간도 등에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상동광산, 직산광산, 경주의 우편차 등을 습격하여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1918년 발각되어 일제에 의해 궤멸되었고 겨우 살아남은 잔존회원들은 만주로 망명하여 암살단과 주비단을 결성해 후에 의열단에 가담하게 된다. 

국내에서의 독립단체는 일제와 친일파, 변절자들의 감시로 인해 범국민적인 무장조직이나 봉기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지하활동과 테러전술, 해외와 국내 회원 간의 연락을 위한 초보적인 조직을 갖추는데 그쳐버렸다. 결국은 국내에서의 독립활동 단체는 거의 궤멸이 되어 해외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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