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 김지영 인턴 / 디자인 이정선 pro]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 강 입구의 리버티 섬에는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 기념일이 새겨진 책을 들고 있는 거대한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이 여신상의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이지만 통상 많은 사람에게는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으로, 꿈과 희망을 품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맞아 주었던 자유의 상징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즉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것으로 프랑스 정부에서 인정하고 있는 여신상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이렇게 3곳이다.

먼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에두아르 드 라불레의 제의로 시작 됐다. 미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기념하는 동상을 만드는 추진 위원회를 설립하고 두 나라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동상은 프랑스가, 동상을 올려놓을 받침대는 미국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동상을 만들 작가로 프랑스 출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이하 바르톨디)가 선정됐고, 바르톨디는 자신의 어머니를 여신상의 모델로 삼아 제작에 들어갔다.

바르톨디는 실물 크기로 동상을 만들기 전 4분의 1크기로 축소된 동상을 만들었고 여러 번 모형을 제작한 끝에 1884년 동상이 완성되게 된다. 높이 46m, 총무게 225t에 달하는 거대한 동상을 완성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상을 옮기기 위해 300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누었고, 기차와 프랑스 군함을 총 동원하여 리버티 섬으로 옮겨왔다. 그렇게 1886년 10월 28일,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 7월 4일보다 10년 뒤에 완성됐지만 그 의미는 더욱 배가 됐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다. 우선 오른쪽에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의 빛’을 상징하고 왼손에 들고 있는 사각형 책자는 미국 독립 선언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1776년 7월 4일이 새겨져 있다. 또한 왕관에 달린 7개 가시는 7개의 바다와 전 세계의 대륙을 의미하며, 몸을 감싸고 있는 긴 옷은 민주주의를 실행했던 로마 공화국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여신상은 쇠사슬을 발로 밟고 있는데, 이 쇠사슬은 노예 제도 폐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프랑스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무엇일까? 파리 자유의 여신상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한다. ‘바르톨디가 만든 시제품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기 1년 전인 1885년 파리 시에 기증된 작품이다’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파리 센강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은 파리에 사는 미국인들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다. 가장 유력한 추측이었던 바르톨디가 만든 4분의 1 축소상은 프랑스 ‘예술과 공예 박물관’에 전시 돼 있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 오다이바 공원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오다이바 공원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정부의 허락을 받아 만든 복제품이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1년간 일본의 후지산케이 그룹(Fujisankei Group)이 '프랑스의 해'를 기념하여 프랑스 센 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빌려 오다이바에 전시하고 반환하였다. 전시기간 동안 자유의 여신상은 오다이바의 상징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반환을 아쉬워한 오다이바의 시민들이 프랑스에 모조품 허가 신청을 내어 현재의 복제품인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뉴욕 여행을 앞둔 이들이라면 자유의 여신상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감상하는 것이 더욱 뜻 깊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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