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조선 전기에 많은 땅을 확보한 양반들은 16세기에 이르러서는 토지를 소작 농민에게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는 일명 ‘지주전호제’를 일반화 시켰다. 이 때 대부분의 농민들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지만 일부 부지런하고 기름진 땅을 일궜던 소작농은 땅 주인인 양반에게 상납을 하고서도 잉여 작물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양반들은 일을 잘 하여 상납을 잘 하는 소작농을 신뢰하였고 더 많은 땅을 일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때문에 소위 잘 나가는 소작농은 그렇지 못한 소작농의 땅을 흡수하고 소작의 소작을 두어 대 소작농이 되는 등 소작농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부를 쌓은 소작농들은 경제적으로 큰 여유를 갖게 되었으며 양반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또한 토지뿐만 아니라 양반 중에는 물주로서 상인에게 자금을 대거나 고리대를 하여 높은 이자를 받으며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소작농의 계층 분화는 양반의 계층 분화와 더불어 계급의 붕괴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양반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쟁과 붕당 싸움에서 밀려나고 대동법 등으로 상업이 발달하는 등 급변하는 경제 변동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양반은 몰락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몰락 양반은 양반이라는 신분은 있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돈이 많은 상인이나 양민의 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체면을 생각하면 양반은 굶어죽을지언정 양인의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양반의 체면보다는 삶을 택한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부를 쌓은 양민들은 경제력은 있으나 신분이 낮다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때문에 신분상승에 대한 갈망이 엄청났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과거를 볼 상황은 아니었기에 경제력으로 승부를 봐야 했는데 마침 몰락양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되었고 몰락양반과 부농의 이해관계는 양반이라는 족보의 거래가 성립되는데 큰 요인이 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몰락양반이 부농에게 돈을 받고 양반 신분을 판 것이다.

양반의 경제적 몰락은 조선의 전통적인 계급체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게 되었고 계급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바야흐로 계급이 갑이 아닌 경제력이 갑인 세상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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