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기자 / 디자인 이정선 pro] “농구에게, 이번 시즌이 내가 현역에서 뛰는 마지막이다. 여섯 살 때부터 너와 사랑에 빠졌다. 내 심장은 여전히 뜨겁게 뛰고 고된 훈련도 참을 수 있지만, 몸은 작별을 고해야 할 때를 알고 있다. 땀과 고통 속에서 경기를 했다. 너(농구)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NBA의 살아있는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한 블로그에 은퇴 심정을 밝히며 직접올린 글이다. 지난 4월, 미국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간판 가드 ‘코비 브라이언트’가 2015-16 시즌을 마친 뒤,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37년 농구 인생을 돌아보자.

코비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NBA선수였던 조 브라이언트로 아버지로부터 농구의 피를 물려받았다. ‘코비’의 본명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고베 스테이크’의 고베(cobe)에서 따왔다.

코비가 여섯 살이었을 때 가족들이 전부 이탈리아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NBA 녹화비디오를 보면서 나름 향수병을 달래며 농구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코비는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코비가 재학 중이던 3년간 로워 메리언 고교가 기록한 전적은 77승 13패, 이때 코비는 무려 5개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맹활약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코비는 NBA진출을 하게 된다. 고교 시절부터 맹활약을 펼친 코비는 대학진학 대신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그 결과 전체 13순위로 원래 ‘샬럿 호네츠’팀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드래프트 당일 코비를 눈여겨본 ‘LA 레이커스’가 당시 훌륭한 센터인 ‘블라디 디박’ 선수와 ‘코비’를 트레이드하여 LA 레이커스의 코비가 탄생되었다.

그렇게 NBA농구 선수가 된 그는 "99%의 정확도와 최고의 스피드로 연속해서 공격하는 블랙맘바의 능력"을 코트에서 보여주겠다며 스스로를 ‘블랙맘바’라고 붙이며 코트를 종황무진했다.

코비에게 시련도 있었다. NBA선수로 맹활약 하던 중 2004년 코비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았다. 코비는 당시 합의로 성관계 했지만, 여성은 다른 식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 했다.그 후, 그는 자숙하며 한 단계 진중한 스포츠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을 갖는다. 그런 영향에서인지 코비는 농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가며 ‘고급 와인과 같이 숙성되어 가는’ 플레이를 빗대 스스로를 'vino(와인의 스페인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듯 20년간 NBA코트를 누빈 코비는 LA 레이코스의 유니폼을 입고 ‘5번의 NBA 챔피언십’, ‘1번의 정규리그 MVP’, ‘18번의 올스타 선정’, ‘11번의 올-NBA 퍼스트팀 선정’ 등 각종 기록을 세웠다. 또한 코비는 미국의 올림픽 2회 우승을 도왔고, ‘샤킬 오닐’과 함께 LA 레이커스의 NBA 3연패(2000~2002)를 일구는 등 팀의 5회 우승에 기여했다. 그의 통산 기록은 25.0점 5.2리바운드 4.7어시스트 1.4스틸 FG 44.7% 3P 32.9%다.

이 많은 기록을 세운 코비는 2016년4월, 코비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2015-16 미국프로농구(NBA)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NBA인생 마지막 경기를 진행했다. 이날 코비 브라이언트(38·LA 레이커스)는 은퇴경기에서 60점을 획득했다.

그렇게 코비는 NBA에서 20년 동안 오직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다 NBA의 '살아 있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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