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태조 왕건이 신라의 골품제도를 몰아내고 세운 고려 왕조. 그런 고려도 끝이 보였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에는 신진사대부의 성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대부분 지방의 향리 출신이며 중소 지주층에 속하던 신진사대부는 과거를 통해 중앙에 진출하였으며 성리학을 사상으로 수용했다.

이들은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을 가졌고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하는 시기에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와 화친을 맺을 것을 주장했다.

또한 토지와 관직을 독점하고 있던 권문세족을 비판했고, 대표적 신진사대부였던 정도전은 유교적 원칙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불씨잡변이라는 책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불교를 비판했다.

 

이렇게 고려의 개혁을 이끌어 가는 신진사대부는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게 되는데 온건파는 고려의 왕조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하는 것을 주장했는데 이색과 정몽주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반대로 급진파는 썩을대로 썩은 고려를 끝내고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정도전과 조준이 이에 속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신흥 무인 세력들이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이 중 이성계는 급진파 신진사대부와 연합을 하게 되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것을 도모하게 되는데, 명나라와 고려의 관계 악화가 그 불을 당겼다.

고려는 명나라와 원나라 모두에 사신을 보내며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었는데 공민왕 뒤에 즉위한 우왕은 친원 정책을 표방하여 명나라를 자극했다. 이에 명나라는 함경북도 일대의 철령위를 명나라 영토로 편입하려 했고 이에 분개한 고려에서는 최영을 중심으로 한 무장들이 요동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이에 이성계는 요동진출을 위해 출병을 했다가 위화도 회군을 하여 최영 등의 세력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이성계는 명과의 관계를 호전시키고 구세력은 도태되었으며 친명파가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1391년에는 과전법을 실시하여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정몽주 등 고려를 지지했던 온건파 신진 사대부 세력을 제거,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내어줌으로써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한반도의 중세를 장식했던 고려(918∼1392)는 약 5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잘못된 외교로 멸망을 맞이하게 된 고려. 국가의 존망에도 영향을 주는 외교는 정말 매우 중요하고 신중해야 할 정치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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