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신진사대부는 고려 말의 정치지배세력 중 하나이다. 신진사대부는 무신정권 시절 무신이 문신을 몰아낸 후 행정적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지방의 행정을 담당했던 토착세력을 등용하거나 과거를 통해 신규로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고려 말에는 중국 강남지방의 선진적인 농사 기술이 전래되어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이런 성과를 지배했던 사람들이 바로 지방의 중소지주들인 신진사대부들이었고 이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에 진출하게 되었다.

사대부의 ‘사’는 글을 읽는 것을 말하며 ‘대부’는 정치인을 뜻한다. 때문에 사대부라 함은 학자적 관료의 의미를 갖는다.

 

신진사대부는 고려의 경제를 황폐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실천 윤리학인 성리학을 도입하게 되었다.

당시 불교는 권문세족과는 한 몸과 같은 세력이었는데, 신진사대부의 이런 불교에 대한 공격은 곧 권문세족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게 되었다.

또한 원을 배척하려 했던 공민왕의 개혁을 지지함으로써 원의 권세를 등에 업고 있던 권문세족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거기에 신진사대부는 고려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문세족의 기반인 정치 및 토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니 권문세족에게 신진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었다.

권문세족의 신진사대부에 대한 탄압은 지속적이었지만 위화도 회군(1388) 이후 정치의 주도권은 완전히 신진사대부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권력을 잡게 된 신진사대부의 개혁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이성계의 새 왕조 수립이라는 목적과 일치하여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결국 권문세족들이 부당하게 착취했던 사전에 대한 개혁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빠른 개혁을 추구하는 급진개혁파와 충격을 최소화 하려는 온건개혁파가 있었는데 정도전을 위시한 급진개혁파가 사전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여 과전법(땅은 국가가 관리하고 공이 있는 신하만이 수조권의 일부를 갖게 하는 제도)을 마련하고 조선건국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여 조선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핵심계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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