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지난 2000년에 방영되었던 대하사극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뿜었던 등장인물이 있었다. “나는 미륵이니라”라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던 후고구려의 왕이자 승려였던 ‘궁예’. 궁예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궁예의 출생은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서는 신라 진골 출신으로 헌안왕의 아들 혹은 경문왕의 아들로 추정된다고만 전해진다.

궁예 5월 5일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지붕 위에 흰빛이 긴 무지개처럼 위로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이에 일관(천문학과 점성을 담당하는 관원)은 나라에 이롭지 못해 죽이는 것이 좋다는 예언을 내 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궁중의 사자(使者)를 시켜 그 집에 가서 그를 죽이도록 하였다. 하지만 사자는 간난아기를 차마 죽이지 못해 포대기 속에서 꺼내어 누마루 아래로 던졌는데, 젖먹이는 종이 몰래 받다가 잘못해서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게 되었고, 그길로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고생스럽게 기르게 되었다.

궁예는 나이가 10여 세가 되어도 장난만 치자(당시 10여 세면 꽤 자란 나이로 본다) 어머니(궁예를 데리고 도망나온 종)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나라의 버림을 받았다. 나는 이를 차마 보지 못하여 오늘까지 몰래 너를 길러 왔다. 그러나 너의 미친 행동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남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너는 함께 화를 벗어나기 힘들 터, 이를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궁예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여기를 떠나 어머니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세달사(지금의 흥교사)로 가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이라고 이름지었다.

궁예는 장성하자 승려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고 기상이 활발하며 뱃심(배짱)이 있었다. 기도를 올리러 가는데 까마귀가 무엇을 물어다가 궁예의 바리때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보니 상아로 만든 조각에 ‘왕(王)’자가 쓰여 있었다. 궁예는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에 대해 비밀로 하고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 말기에는 귀족들의 횡포로 인해 정치가 황폐해지고 도처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개미떼같이 모여들었다.

궁예는 이런 혼란한 틈을 이용하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891년 죽주(竹州)의 도적 우두머리 기훤(箕萱)을 찾아갔다. 하지만 기훤은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궁예 역시 그런 대우를 받고 실망하여 동료인 원회 신원 등과 함께 양길(梁吉)을 찾아갔다. 양길은 신훤과는 다르게 그를 우대하고 일을 맡겼으며, 군사를 주어 동쪽으로 신라의 영토를 공략하게 하였다.

그러나 세력을 키운 궁예는 894년 양길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고, 결국 양길을 쳐서 그 세력이 강원·경기·황해 뿐 아니라 충청북도 일대까지 미쳤다.

901년(효공왕 5)에는 왕건의 도움을 받아 송악(개성)에 후고구려를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 904년에는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이듬해 수도를 철원으로 옮겼으며, 911년에는 국호를 다시 태봉(泰封)이라 했다.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여 머리에는 금 고깔을 쓰고 몸에는 방포(方袍, 네모진 가사)를 입었으며, 맏아들을 청광보살(靑光菩薩)이라 하고 막내아들을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고 했다.

또한 외출을 할 때는 매우 화려한 행진이 되었는데 항상 고운 비단으로 꾸민 백마를 이용했으며 소년소녀는 일산화 향화를 받들어 앞에서 가고 비구니 2백여 명은 찬불가를 부르며 뒤에서 오게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불경 20여 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승려 석총이 그 내용에 대해 비난했다가 철퇴로 맞아 죽기도 했다.

궁예의 기이한 행동 중 점입가경이었던 사건은 부인 강씨가 궁예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하자 이에 앙심을 품어 신통력(관심법)으로 강씨의 간통사실을 꿰뚫었다며 그녀와 두 아이까지 죽인 사건이다.

그 뒤로 궁예는 의심이 더욱 많아져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려의 태조 왕건을 위시한 신하들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결국 그를 쫓아내게 되었다.

궁예는 왕건이 궁으로 쳐들어오자 혼비백산해 평복 차림으로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부양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비참하게 살해되었다.

궁예는 순전히 능력 하나로 자신의 국가까지 세울 수 있었지만 세운 국가를 지키고 아끼는 것 까지는 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궁예를 보면 쌓아 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매우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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