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한성현, 신승우] 한국 도자기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개최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오는 4월 24일부터 시작이 된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대부분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

오늘 아이디언 인터뷰에서는 아름다운 도자기 축제의 메인 행사장이자 한국 도자기의 명산지인 경기도 이천에서 반세기동안 도자기와 함께한 해주도예연구소 청자 장인 엄기환 선생님과 함께 도자기의 역사,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part1. 이천 도자기의 산 증인, 엄기환

-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엄기환입니다.

- (목소리에서 연륜이 느껴진다)선생님. 올해로 도자기를 만드신 지 어느 정도 되셨나요?
지금 제 나이가 70입니다. 도자기를 처음 접했을 때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살에 입문했으니 올해로 56년 째 도자기를 굽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조금 넘었죠.(하하)

▲ 56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어온 해주 엄기환 선생

- 초등학교 때 부터요?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게 된 건가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했지만 저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가 못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하게 됐죠. 59년도에 처음으로요.

-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을 텐데요?
한국전쟁이 진행되면서 전 국토가 폐허가 됐잖아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옹기며 칠기(옹기-밖에서 사용하는 항아리, 칠기-부엌에서 쓰는 간장항아리, 식초항아리 등)가 다 파손 된거죠. 이천에도 옹기점과 칠기점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천에서 옹기·칠기점을 만드는 도공들이 직접 서울에 가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무역회사를 하셨던 (故)조소수 선생이 그 모습을 보고, 도공 홍재표 선생을 만나 “어디서 굽느냐?”고 물었고, 이천에서 굽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한국전쟁 전후로 59년부터 지금까지 이천 한 곳에서만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 후 故조소수 선생이 이천에 와서 옹기와 칠기 굽는 것을 직접 보고, 도공들에게 ‘도자기’를 만들어보라고 하던 것이 지속되면서 ‘이천=도자기’가 상징화 된 겁니다.

part2. 도공들이 이천으로 모인 이유는 바로 ‘흙’ 때문이다

- 사실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도 도자기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왜 유독 ‘이천 도자기’가 유명할까요?
원래 ‘청자’는 전라남도 강진이 유명했고, ‘백자’는 경기도 광주지역이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1883년도에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고유의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게 했죠. 즉, 일본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은 겁니다. 그때 전남 강진과 경기도 광주에 있던 도공들이 흩어져서 ‘이천’으로 모이게 된 겁니다. 물론 여주나 광주도 유명하지만, 이천 지역이 흙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이천으로 모이게 된 이유기도 하고요.

- 아. 그 도공들이 이천에서 도자기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거군요.
아니오. 아닙니다. 일본이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게 해서 옹기와 칠기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故조소수 선생이 58년도에 이천에서 ‘광주요’를 창설하면서 이천에서 다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 모든 것들이 재료가 좋아야 좋은 품질이 나오듯 도자기도 좋은 흙으로 만들어야 최상의 도자기가 나올 수 있다.

- 그렇군요. 아까 ‘흙이 좋다’는 말을 하셨는데,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흙이 좋다는 뜻입니다.예를 들어 우리가 튼튼하고 맛있는 배추로 김장을 해야, 김치의 맛도 맛있잖아요. 주된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도자기의 재료인 ‘흙’이 좋아야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 반세기동안 도자기를 만드셨잖아요. 요즘 도공들은 어떤가요?
가장 아쉬운 점이 이점 인 것 같습니다. 요즘 도공들은 예술의 개념보다는 밥벌이, 돈벌이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는 것 같아요. 도자기는 천년동안 내려온 우리나라의 역사거든요. 역사를 보존하는 사람이 ‘나’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예술을 승화시켜야 되는데, 경제적인 부분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도자기에 혼을 불어 넣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참, 아쉽죠.

- 도자기에 대한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하) “지금 당신이 만드는 도자기는 그냥 도자기 일 수도 있지만, 후손에게 전해질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요. 도공이 택한 이유를 더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같이 잘해서 힘든 역경을 딛고 나가야할 시기라고 생각 됩니다.

part3. 문화와 예술을 어릴때부터 접해야 하는 이유
- 도공의 정신과 혼이 담긴 도자기. 후손들에게도 잘 전해져야 할 텐데요.
우리 문화와 예술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워야 합니다. 어떤 한 아이에게 “고구마는 어디서 나니?”라고 물어보니 “슈퍼에서 나요”라고 얘기를 했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식재료들도 어디서 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거죠.

이러니 도자기 같은 문화나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작년부터 제가 ‘이천도자기축제’에서 도자순례라고 체험교육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흙을 고르는 법, 점토 만들고 기초 틀부터 굽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 청자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지금에서 끝내지 말고 미래의 후손에 까지 제대로 전해야 한다.

- 도자기의 역사와 우수성을 미래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천에는 전국 유일 도예 특성화고등학교인 한국도예고등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배우고 만들면서 도공의 꿈을 키우는 것이죠. 그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또 다른 도자기를 만들고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이천 세라피아에 방문했을 때 도예고등학교에서 졸업 작품을 전시한 것을 봤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예쁘더라고요.
그렇죠? 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다보니까. 오랫동안 한 장인들은 역사부터 청자, 백자, 분청의 틀을 못 벗어나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은 자유분방하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색깔을 마음대로 내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보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죠.(하하)

청자 장인 엄기환 선생을 통해 알아본 이천 도자기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 슬픈 역사에서 시작한 이천 도자기지만, 그 무엇보다 한국인의 혼과 얼이 많이 담겨 있다. 이어지는 아이디언 2편에는 도자기의 만드는 과정과 세계화를 위한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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