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1960∼80년대 뜨거운 인기 속에 스크린을 종횡무진 했던 영화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오던 故 윤정희는 이날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strong>영화배우 윤정희 별세 </strong>(연합뉴스 제공) <br>
영화배우 윤정희 별세 (연합뉴스 제공)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배우 윤정희. 그녀는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1천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제 인기 여우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작품 '안개'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윤정희는 1960∼80년대 은막을 장식했던 배우로 정말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60년대에는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데, 주요작으로는 '장군의 수염'(1968), '신궁'(1979), '저녁에 우는 새'(1982), '위기의 여자'(1987), '만무방'(1994) 등이 있다. 배우로서 출연한 영화가 한국영상자료원 집계로만 280편에 달할 정도로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0∼70년대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상, 인기 여우상 등을 20여 차례나 받았다.

배우 윤정희(오른쪽)가 1968년 영화 '파란 이별의 글씨'에서 배우 신성일(2018년 작고)과 함께 연기하고 있다.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DB. 재배포 및 DB 금지]

윤정희는 최고 인기를 누리던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다. 독일 뮌헨에서 윤이상 감독의 오페라 '심청이' 관람을 하러 갔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문화계 '잉꼬부부'로 불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활동이 뜸했지만,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영화계에 당당히 복귀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시'는 홀로 남겨진 손자를 돌보는 예순 넘은 노인 미자가 문화센터의 시를 쓰는 강의를 듣는 이야기로, 윤정희는 극 중 미자를 연기했다. 미자는 공교롭게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치매 환자로 나온다. '시'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배우로서 활동은 중단했는데, 이 영화로 2011년 LA비평가협회와 시네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strong>배우 윤정희 </strong>[가나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br>
배우 윤정희 [가나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배우로서뿐 아니라, 문화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먼저 윤정희는 1973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 제3대학에서 영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은 것은 물론, 각종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해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1995), 제12회 뭄바이영화제 심사위원(2010), 제17회 디나르영화제 심사위원·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2006) 등을 지냈다.

영화배우 윤정희 별세 (연합뉴스 제공) 

말년에는 10여년 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안타까움을 샀던 배우 윤정희. 그녀는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조차 연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에서는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 "제 직업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며 현역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앞서 2010년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아흔 살까지 배우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중들의 스타에서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원로배우 故 윤정희(본명 손미자). 그녀는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이자 평생을 '현역 배우'로 살고 싶어 했던 진정한 영화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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