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간 체결한 9·19 군사합의가 북한의 무차별적 동시다발 도발로 파기의 갈림길에 섰다. 북한은 지난 14일 야음을 틈타 군사합의가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코앞까지 군용기를 내려 보낸 데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발사에 나선 다음 9·19 합의를 명시적으로 위반하는 완충구역 내 방사포 등 포병 사격까지 감행했다. 이처럼 북한이 완충수역으로 포병사격을 감행하고 비행금지구역을 위협하면서 9·19 군사합의는 체결 후 4년여 만에 파기 가능성이 가장 커졌다.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 시기 2018년 9월 19일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정식 명칭은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다. 9·19 군사합의는 접적지역에서의 군사적 우발 충돌 방지가 목적이며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 포병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금지구역, 완충수역 등을 설정했다.

출처 - 연합뉴스

즉 '9.19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남북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대 대북 성과로 꼽아왔다.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이외에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서해 해상 평화수역화, 교류협력과 접촉 왕래 활성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강구 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는 북한이 9·19 합의의 정신과 취지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회의감이 여권과 군 등에서 제기된 바 있다. 군사합의는 남북이 함께 준수해야 의미가 있고 유지된다는 입장으로, 우리만 일방적으로 지키고 북한은 이를 무시하면 무의미하다는 취지였다. 북한이 7차 핵실험 등으로 선을 넘는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는데 북한이 앞장서서 합의를 정면으로 어겨버린 셈. 

앞서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대표적 사례는 종전까지 2건 있었다. 이번 사격은 동해와 서해로 장소가 다르고 시간대가 달라 군은 이를 3번째와 4번째 대표적 위반 사례로 분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사격은 대표적인 4차례 사례에 포함되고, 그 외에 다수 위반 사례가 있어 왔다"며 북한의 9·19 위반이 '최소 4차례'라고 설명했다.

우선 2019년 11월 23일 창린도 방어부대의 해안포 사격이 있다. 연평도 포격전 9주기에 창린도 방어부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로 사거리 12㎞의 76.2㎜ 해안포를 발사한 사건이다. 창린도는 9·19 합의에 따라 해안포 사격이 금지된 '해상적대행위 금지구역' 내에 있다. 2020년 5월 3일에는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 북한군 GP에서 발사된 총탄 수발이 날아오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는 의도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고 군이 분석했다. 창린도 해안포는 당시 규모가 공개되지 않았고 중부전선 총격은 총탄 수발 수준이었던 만큼 이번 동·서해 포병사격은 최대 규모 9·19 합의 위반으로 파악된다. 이외 '다수의 위반 사례'는 북한이 간헐적으로 해안포 포문을 개방하는 경우 등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현 여권을 중심으로 9·19 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9·19 남북군사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전면 파기는 국내법상 불가능하고 따로 기한을 정해 효력을 정지할 수만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남북 간 체결된 합의서를 파기하는 것은 이 법률에 위배된다. 이 법률 제23조 2항에는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률상 '남북합의서'는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와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합의서는 대통령이 전부 또는 일부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지만, 반드시 '언제부터 언제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는 방식으로 기한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남북 간에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체결된 것을 비롯해 지난 50년간 680여 회에 달하는 남북간 회담을 거쳐 체결된 합의서만 260개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시대와 남북관계가 변해 사문화된 합의서도 적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 파기나 무효를 선언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도발로 파기 기로에 선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냐, 유지냐, 정지냐, 과연 정치권의 판단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