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이윤아Pro]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비운의 천재 화가’로 남아있는 이중섭. 험난한 시대를 겪으면서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에 대해 알아본다. 

20세기 초반, 한국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였던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모두 겪었던 이중섭은 전쟁 속에서도 가족과 자신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전쟁으로 인해 거처를 옮겨다니면서 극한 가난을 겪어야 했지만 작품 속에 언제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렸다는 이중섭은 어릴 때부터 소를 보고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흰소'가 꼽히는데, 이 소는 백의 민족이었던 대한민국을 의미한다. 

‘흰소’에 등장하는 소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라있다. 이는 당시 6.25 전쟁 이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중섭의 다른 소 그림들과 달리 황소의 머리 부분을 확대해 그린 ‘황소’란 작품에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 고개를 휘저어 올린 소의 움직임을 포착해, 이중섭만의 탁월한 표현력을 담아냈다. 

작품 ‘황소’ 속의 소는 왼쪽으로 향한 얼굴과 눈빛으로 공간을 장악한 느낌을 주고, 코와 입가의 선명한 붉은색과 배경의 붉은 노을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많이 꼽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이중섭은 빈손으로 나선 피란길에도 그림도구만은 챙겼다. 그는 작품 곳곳에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할 만 큼, 죽을때까지 가족을 많이 그리워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신혼생활은 아주 잠시. 6.25 전쟁이 터져 제주도로 피란을 갔을 당시, 아내와 두 아들 그렇게 네 가족이 함께 했던 제주도에서의 11개월은 이중섭이 죽기 전까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다고 한다. ‘해변의 가족’, ‘길 떠나는 가족’, ‘닭과 가족’ 등의 작품에서 이중섭은 자신의 가족을 대체로 누드로 그렸는데, 모호한 배경에 누드로 그려낸 이미지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는 현실의 비극과 차단된 태고적 이상향의 느낌을 주고 있다. 즉 그가 그린 가족 그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만날 수 없는 가족과 다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애틋한 갈망이 짙게 묻어 있는 것이다. 

죽기 전 일본에 있는 아내와 마지막 4년간 주고받은 편지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상당한다. 이중섭이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는 이중섭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특히 이중섭은 편지에 그림을 그려 보냈고, 글 없이 그림으로만 전한 엽서만 해도 1백여 점이나 된다. 

한편 전쟁 속에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이중섭은 그림도구조차 살 돈이 넉넉하지 않아 담뱃갑 속에 든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그 중 은종이에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그린 ‘은지화’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꼽힌다. 그가 은지화에 가장 많이 그린 그림도, 늘 그리워하던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간다. 

전쟁 속에서 희망을 그린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 그러나 이중섭의 애틋한 마음만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그의 가족과 우리 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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