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수학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필즈상.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40세 이전에 수상자가 되려면 늦어도 30대 초중반에는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필즈상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1만5천 캐나다 달러(약 1천5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필즈상 받는 허준이 교수 (연합뉴스 제공) 

한국 수학자가 이 필즈상을 받아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석학 교수가 5일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것. 국제수학연맹(IMU)은 이날 핀란드 헬싱키 알토 대학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른 3명과 함께 허 교수를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인이나 한국계 학자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나이 제한 때문에 39세(1983년생)인 허 교수에게는 올해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허 교수는 자신을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로 지칭한다. 허 교수는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출생 후 두 살 때 부모님과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와 석사과정까지 한국에서 다녔다. 2007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물리천문학부 학사, 2009년 같은 학교 수리과학부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는 2014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받았다.

허준이 교수 [호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2002년 대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할 당시만 해도 수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고 한다. 허 교수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에 따르면 허 교수는 학부 3학년 때 수학에서의 재능을 발견했으며 그전까지는 시인이나 과학 기자 등을 꿈꿨다고 한다. 김 교수의 회상에 따르면 허 교수는 고급 수학 강좌에서 유독 차분하고 강한 집중력으로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허 교수는 학부를 마칠 때쯤 서울대의 노벨상급 석학초청 사업으로 초빙된 필즈상 수상자 헤이스케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이 수업이 그를 수학으로 이끈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이후 본격적인 수학자로서의 길을 걸은 허 교수는 2007년 김영훈 교수의 지도하에 수리과학부 석사과정에 입학해 대수기하학 연구를 시작했고, 초곡면을 평면으로 잘라서 얻는 특이점의 밀러 파이버를 연구해 2009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허준이 교수 (연합뉴스 제공) 

이후 허 교수는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고, 이때부터 조합론의 오랜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수학계에 명성을 떨쳤다. 그중 가장 먼저 해결한 난제는 리드(Read) 추측이다. 리드 추측은 채색 다항식을 계산할 때 보이는 계수의 특정한 패턴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1968년 제기됐다. 허 교수는 조합론 문제를 대수기하학의 방법을 활용해 해결했는데, 수학계에서는 조합론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리드 추측에서 확장된 로타 추측도 마찬가지로 대수기하학적 직관에 바탕을 둬 조합론을 해결한 사례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 밖에도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다우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브리로스키(Brylawski) 추측 등 허 교수가 해결한 난제는 10여 개에 달한다. 허 교수는 이러한 뛰어난 연구 업적과 왕성한 연구 활동으로 앞서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을 받기도 했다.

필즈상 수상한 허준이 교수 (연합뉴스 제공)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뒤 "필즈상 수상자 명단엔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영웅 같은 분들도 이름이 줄줄이 있다"며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수학자 최초로 필즈상을 받은 허 교수는 지난 8일 한국 땅을 밟았다. 허 교수는 이달 13일 고등과학원 강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국내 일정을 시작한다. 그는 국내 학계에서 하게 될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여름 동안 고등과학원에서 근무한다"며 "고등과학원 연구원들과 연구 활동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나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 돌아와 생각해보니까 구불구불했지만 가장 좋고 빠르고 최적화된 길이었다"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천천히 차근차근 한 발짝씩 걸어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수학은 꾸준히 진득하게 앉아 절대 포기 안 하고 10년, 20년 하는 게 강조돼있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끔 적당한 때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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