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마스크, 레진, 17 x 10 x 33(h)cm, 2019

밀라노에서 활동 중인 조각가 정득용(45)이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두상 조각의 일부를 샌딩 머신으로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 오브제이다. 작가 주변의 인물 혹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전통적인 조각 방법으로 직접 제작하고 샌딩 머신으로 그 일부를 지우는 작업을 했다. 석고상의 형상과 사라진 부분의 기하학적 면이 조합된 아름다운 조각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조각이라기 보다 샌딩 머신으로 이미지를 지울 때의 순간을 기록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조각은 거울처럼 주변 공간의 이미지를 담아 내도록 사포로 갈아 내기도 한다.

정득용 작가는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는 초기에 아르테 포베라의 영향을 받아 버려진 오브제, 기성품인 레디메이드를 사용하여 작업을 했다. 버려진 의자를 자유롭게 조합하여 추상적인 그 어떠한 것을 만들기도 했고 유럽에 버려진 철강 오브제를 가지고 사포로 갈아 마치 사무라이 칼처럼 번쩍이게 제련하는 작업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흔한 그리스 로마 석고상을 구입하여 산업용 샌딩 머신으로 부분적인 제거작업을 했던 것이 현재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전시 제목인 ‘생각하는 내가 있기 이전에: Erasing Cogito’는 생각하는 실체인 존재 자체를 임의적으로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 샌딩 머신으로 ‘생각하는 주체’를 갈아버리면서 존재도 지워진다. 사라진 부분의 비워진 공간을 보면 상상하게 되고, 그 자체로 원형적인 얼굴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 결국 일부를 비움으로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생각 소거’가 이번 전시의 주제이다.

정 작가는 마르셜 뒤샹, 아르테 포베라 등의 반 미학적 재료의 물질적인 탐구를 시도했던 예술에 전통적인 조각 방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이전 예술들과는 다르다. 이탈리아에서 산지 20년이 된 작가는 이탈리아의 미적인 요소와 한국의 정신적인 부분의 경계에서 대립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조화를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안과 밖,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인위성과 자연성을 조화와 균형을 통해 ‘지금’으로 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계속되는 관심사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이선 큐레이터는 “로마시대 인물부터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두상 조각과 설치물들을 통해, 고전주의적 제작 방식과 작가의 모던한 개입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득용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이십여년간 작업하며 유수한 예술기관에서 전시를 해왔다. 정 작가의 첫 국내전을 계기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재외 작가의 국내 활동과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각가는 샌딩 머신으로 석고 조각상을 갈 때 가루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지는 조각의 이미지를 보며 아쉬움과 시원함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지워지는 그 순간을 기록한 결과물을 보며 관람객들은 어떤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전시에서는 작가의 두상 조각, 오브제, 비디오 작업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7월5일부터 24일까지 경리단길에 위치한 스튜디오 디바인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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