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창] 세상 빛을 보기까지, 발굴 작업을 통해 땅속의 문화재가 세상으로
[지식의 창] 세상 빛을 보기까지, 발굴 작업을 통해 땅속의 문화재가 세상으로
  • 보도본부 | 허정윤 PD
  • 승인 2022.06.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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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허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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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영원히 흙 속에 묻힐 뻔했던 신라, 백제, 가야의 찬란한 유물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재 발굴 덕분이었습니다. 문화재 발굴은 문화재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인데요. 국내에서는 지난 1946년 5월 경주 호우총을 시작으로 1960년대 이후 본격화하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땅속의 문화재가 세상에 빛을 보는, 오늘은 우리나라 문화재 발굴 역사를 살펴봅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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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발굴된 백제 제25대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백제 제6호 고분의 배수시설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됩니다. 역사적인 발굴이었죠. 무덤 앞의 지석에는 묻힌 왕과 왕비의 이름이 기록되었고, 이로써 이 무덤은 유일하게 연대와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삼국시대 왕릉으로 기록됩니다. 또 부장품이 고스란히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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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있었던 대규모 발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백제의 국가상, 사회생활, 남조 양나라와의 문화교류, 장사를 지내는 예법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나라의 상호 간에 문화교류, 각국 문화의 특수한 점과 공통되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한편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신라 문화재 조사·발굴은 경주관광개발 종합계획에 따라 활발히 추진됐고,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발굴됩니다. 1959년 실시된 감은사터 발굴은 우리나라 최초의 절터 발굴조사였는데요. 절터 내 3층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우리 손으로 찾아낸 최초의 신라시대 ‘사리장엄구’이기도 합니다. 제작 기술면에 있어서도 최고급 금속재료를 사용해 조형미와 조각미가 뛰어나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줍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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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문화재 발굴은 계속됩니다. 1971년 경주관광개발 종합계획에 따라 신라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황남대총(제98호분), 천마총(제155호분), 황룡사터, 안압지 등이 연이어 발굴됐고, 황남대총과 마주 보고 있는 제155호분에서는 신라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천마도가 발견됩니다. 이 때문에 고분 이름은 천마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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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에 걸친 발굴 작업으로 모습을 드러낸 황룡사는 당시 동양 최대의 절이자, 최고(最高)의 9층 목탑이었음이 밝혀집니다. 또 안압지 역시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곳 중 하나인데요. 준설작업을 위해 연못의 물을 빼는 과정에서 못 바닥에서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로 인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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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91년, 금관가야 수장층의 공동묘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파형동기, 청동 항아리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됩니다. 가야의 유물 발굴을 통해 가야가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수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또한, 1992년 경남 함안군에서 발굴된 대형 가야고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한 형태를 갖춘 말 갑옷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픽사베이 / 위키피디아 / 공주 공식 홈페이지 / 국립중앙박물관 / 연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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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연천 전곡리의 전기 구석기 유적 발굴을 통해서는 20만 년 전에도 한반도에 인류가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의 발굴은 어떠한 이유에서 행하여지건 학술적인 연구와 조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발굴에 앞서 주무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발굴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땅 속에는 빛을 보지 못한 문화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지금도 옛것의 흔적 찾는 작업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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