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지정된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베려하자? [지식용어]
천연기념물 지정된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베려하자?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22.05.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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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지난 11일 문화재청은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를 12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고려시대 무인 임난수(1342~1407)의 사당 앞에 암수 한 쌍으로 식재된 은행나무로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에 위치해 있다. 수령(樹齡·나무의 나이)은 약 600년으로 추정되며, 오래된 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동쪽 수나무는 높이 20m, 지표 부근 둘레 6.9m, 폭 20.5m 안팎이고, 서쪽 암나무는 높이 19m, 지표 부근 둘레 5.4m, 폭 14m 내외다.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임난수 장군의 굳은 충절을 기리는 의미로 식재되었다. 임난수는 고려 말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부안임씨의 중시조이다. 그러나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벼슬을 주며 청했으나,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응하지 않고 양화리(현재 세종리)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 충절이 이어져서일까,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600년이 지난 현재도 굳건하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제공 - 문화제청
사진제공 - 문화재청

이번에 문화재청의 지정으로 세종시 기념물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에서 천연기념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로 명칭이 바뀐 이 나무는 조선시대 전통 조경 재식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아 왔다.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을 정문 좌우에 심는 조경 양식은 유교와 관련돼 있는데, 이를 '행단'(杏壇)이라고 부른다. 

또 다양한 문헌 기록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실제로 '부안 임씨세보'의 1674년 목판도 '부조사우도'를 보면 사당 앞쪽에 규모가 상당히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또한 충청도 공주목이 1859년 펴낸 '공산지'에도 임난수 사당과 은행나무 한 쌍에 관한 내용이 있다. 

한편,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신성시 되어져 오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큰 변이 생길 때 은행나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전해내려 온다. 대표적으로 1910년 경술국치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가 울었다고 전해지며, 특히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베려고 하자 큰 벼락과 함께 울음소리가 나서 결국 베지 못했다고 구전되어진다. 이처럼 신성시 여겨지는 만큼 부안 임씨 후손들은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부안임씨 후손들이 모여 은행나무 목신제를 지낸다고 알려졌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승격된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세종시 출범 이후 첫 천연기념물인만큼 세종시는 “임난수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은행나무 역사공원을 조성해 관광명소로 꾸밀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됨에 따라 보존관리 예산의 70%를 나라에서 지원받는 등 국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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