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도에는 과연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섬의 규모도 규모인데다 예부터 표류로 도착하는 사례들도 많았던 것을 보면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나! 무려 선사시대부터 제주도에서는 문명의 흔적이 발견 되었다. 오늘은 제주의 유구한 역사의 증거, ‘제주 삼양동 유적’을 가본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 제공 / 이윤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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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양동 유적은 그 주소부터가 남다르다. 제주시 선사로2길에 위치한 유적은 제주시의 동쪽, 삼양동의 동서 1.2-1.5㎞, 남북 0.5-0.6㎞의 2만여 평 범위에 분포하며, 해발 높이 12-14m 정도의 해안단구상의 편평한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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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적이 발견된 것은 삼양동 일대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이다. 1997년 4월부터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2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청동기에서 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집터 200여 곳과 돌로 쌓은 담장, 쓰레기를 버리던 곳 등이 확인 되었다. 거기에 제주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았던 중국계 유물들도 발견되어 이곳의 사람들이 한반도 등 여러 지역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이어나갔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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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416호인 삼양동 유적은 송국리형 움집터를 바탕으로 축조된 제주 지역 최대 규모의 마을 유적으로, 그만큼 수많은 유물들도 함께 나왔다. 각종 토기에서부터 동촉, 철기, 유리구슬, 돌도끼, 숫돌 등 생활용품에 보리와 콩, 비자 도토리 등의 곡물도 함께 출토되어 그들의 생활 상을 잘 엿볼 수 있다. 이 모든걸 잘 전시해 둔 박물관이 함께 위치해있으니 유적 터를 둘러보며 함께 관람한다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 제공 / 이윤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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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바로 앞에는 예쁜 해수욕장이 하나 있다. 근데 보통 떠올리는 백사장이 아닌 흑사장, 즉 검은모래 해변이다. 삼양해수욕장의 검은모래는 예부터 신경통, 관절염, 비만, 피부염, 감기예방, 무좀 등에 효과가 있다고도 하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거닐다 보면 부드러운 모래의 질감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기도 한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사진 제공 / 이윤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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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이 구비되어 있어 자차로 방문 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면 바로 유적 앞에서 내려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편하다. 그 옛날 이곳에 살던 이들은 아마도 백록담의 정기를 받으며 큰 바다를 품에 안고 하루하루를 살지 않았을까. 제주 삼양동 유적에 들려 그때의 사람들이 숨쉬던 공간을 함께 느끼며 역사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일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가기 전 홈페이지나 유선을 통해 꼭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지침을 준수해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자.

*시선뉴스에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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