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계급이 뚜렷했던 조선시대, 궁궐에서의 계급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카드뉴스] 계급이 뚜렷했던 조선시대, 궁궐에서의 계급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 보도본부 | 조재휘 기자
  • 승인 2021.09.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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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윤아 Pro] 국왕 중심제의 전제군주제였던 조선시대에는 직급이 따로 있는 계급사회였다. 관료는 수상 격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의 삼정승 직위가 있으며 갑오개혁 이후로는 영의정이 총리대신 등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관리와 궁녀들도 벼슬이나 때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옷을 입었는데, 그 당시 궁 안의 계급은 또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최고 계급의 국왕이 있다. 생전에는 임금, 전하로 불리며 조선시대의 왕은 사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을 평가받는다. 폐위된 왕에게는 ‘군’이라는 호칭이 붙었는데 왕으로서 조선시대 유교적 질서에서 크게 벗어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군주에게 붙여졌다. 그 예로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왕의 부인 왕비 중전은 생전에 ‘마마’로 불렸다. 왕의 본부인이 아닌 후궁들에게는 내명부의 벼슬을 주어 품계에 따라 정1품은 빈, 종1품은 귀인, 정2품은 소의, 종2품은 숙의, 정 3품은 소용, 종3품은 숙용 정4품 소원, 종4품은 숙원 등의 이름이 주어졌다. 왕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경우에는 ‘상왕’, 돌아가셨을 때는 ‘선왕’이라고 불렀다. 왕이 방계인 경우에는 ‘대원군’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왕의 자녀들 중 아들은 어머니가 중전이냐, 빈 이하냐에 따라 용어가 달랐다. 왕의 본부인의 아들은 ‘대군’으로 딸은 ‘공주’로 불렀다. 본부인이 아닌 첩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군’ 혹은 ‘왕자군’으로 불렀고 딸은 ‘옹주’로 불렸다. 옹주에게 장가든 자는 처음에는 종2품의 위로 봉하였다가 나중에는 정2품으로 올려주었다.

신하의 호칭은 정품과 종품에 따라 나뉜다. 정1품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도제조, 영사, 도제조대장으로 나뉘고 종1품은 좌찬성, 우찬성 제조판사로 나뉜다. 정2품은 지사, 판서, 좌참찬, 우참찬, 대제한, 지사제조, 도총관 등으로 나뉘었고 종2품은 동지사, 참판, 상선, 동지사, 부총관, 병마절도사, 관찰서, 부윤 등으로 나뉘었다.

궁녀는 궁중에서 대전·내전을 모시던 모든 여인들을 말하며 일반적으로는 상궁과 나인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인들과 그 아래 하역을 맡은 무수리, 각심이, 방자, 의녀, 손님 등이 모두 포함된다. 

보통 궁녀에는 3가지 등급이 있었는데, 상궁, 나인, 애기나인으로 나누어졌다. 입궁 시기와 소속부서에 따라 차이를 뒀고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상궁이었다. 나인은 상궁과 역할이 거의 같았지만 주로 상궁의 보조역할을 했고 그 아래에 애기나인이 있었다.

궁궐에서 사용하는 호칭만 봐도 조선시대는 신분 사회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만큼 왕위계승권과 호칭을 분명히 해 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물론 권력 뒤에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던 만큼 역사를 거울삼아 더 발전하는 우리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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