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피플] 명동성당과 인연 깊은 故 정진석 추기경,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실천한 삶
[시선★피플] 명동성당과 인연 깊은 故 정진석 추기경,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실천한 삶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21.05.0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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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021년 4월 27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의 묘비명은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으로 결정됐다.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묘비명처럼 실제로 故 정진석 추기경은 스스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며 민족의 복음화와 평화 증진에 이바지 하는 삶을 걸어왔다.

 2021.5.1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고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제공]

故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12월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으며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서울 성신고 교사(1961∼6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1964∼65), 성신고 부교장(1967∼68)을 지냈다. 1968년에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1970년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만 39세 때인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그리고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며 대주교로 승품했으며,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게 된 그는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사임하기까지 14년간 교구를 대표했다.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온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지난 2013년 3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첫 알현하는 정진석 추기경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故 정진석 추기경은 '교회법 전문가'로도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정 추기경은 교회법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설서 첫 권을 펴낸 데 이어 2002년까지 총 15권의 교회법 해설서 편찬작업을 마무리했다. 또 고인은 많은 역서와 저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은 그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선 故 정진석 추기경은 출생 나흘 만에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는데, 그 장소가 바로 명동성당이었다. 그리고 1939년 7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으며, 1941년 6월 1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신앙을 보다 성숙하게 하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또한 정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고서 신부가 된 곳도 명동성당이다. 아울러 그의 사제 수품 50주년인 '금경축(金慶祝)', 수품 60주년인 '회경축(回慶祝)' 기념하는 자리도 명동성당에서 있었으며, 지난 5월 1일에는 장례미사가 명동성당에서 거행되기도 했다. 90년 전 가톨릭교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셈이다.

故 정진석 추기경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故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숨을 거두는 날까지 지켰다. 본인의 유지에 따라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주고 떠난 것.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2일 건강 악화로 입원하게 되자 사흘 뒤인 25일 자신의 통장 잔액을 꽃동네(2천만원), 명동밥집(1천만원), 서울대교구 성소국(동성고 예비신학생반·2천만원), 교구 청소년 아동신앙교육(1천만원), 가칭 '정진석 추기경 선교장학회'(5천만원)로 직접 지정해 모두 기부한 바 있다.

이후 두 달가량 병원에 있으면서 교구에서 매월 지급해온 비용과 보훈처 참전수당 등이 다시 통장에 쌓였고, 잔고는 800만 원으로 불었다. 이에 병석에 있던 정 추기경은 나머지 통장 잔고는 그동안 자신의 치료를 위해 수고한 의료진과 수녀, 봉사자들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뜻을 받들어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고인이 통장에 남긴 약 800만원을 그의 병 치료와 장례 과정에서 수고한 서울대교구 사제, 직원, 의료진, 봉사자, 2005년 그가 직접 설립한 교구 생명위원회에 감사 성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고(故)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연합뉴스 제공]

이뿐만이 아니다. 선종 후로는 그의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안구 적출 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한 바 있다. 정 추기경은 생전에 나이로 인해 안구 기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료진의 소견을 듣고 연구용으로라도 써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실제로 고인의 각막은 실험 연구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말없이 뒤에서 묵묵히 할 일을 다 하신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고 나누며 베풀라는 추기경님의 메시지를 항상 기억할 것" "예쁘게 살다 가셨다. 그분의 삶을 본받아 나누겠다"  추모객들은 고인의 삶을 높이 평가했다. 자신의 신앙적 소신대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며 삶을 통해 종교의 의미를 세상에 알린 故 정진석 추기경은 영원히 종교계의 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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