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세계 명품 패션 시장을 이끄는 선도 기업 중 하나인 구찌는 2015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지만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손을 거치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 손의 주인공은 현재 구찌의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는 디자이너, 바로 ‘알레산드로 미켈레’이다. 

패션 디자인에 관한 공부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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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태어나 로마 외곽에 위치한 몬테 사크로에서 자란 미켈레는 1990년대 초 로마의 패션 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극 의상과 패션 의복을 디자인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1994년 로마를 떠나 볼로냐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니트 회사인 <Le Copains>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년 후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칼 라거펠트와 함께 럭셔리 하우스인 펜디에 합류했고 이후 브랜드의 가죽 제품을 담당하는 수석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명품 브랜드 구찌의 침체기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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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는 미켈레의 디자인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2002년 톰 포드의 추천으로 미켈레는 구찌 소재 디자인 사무실에서 핸드백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2006년에는 구찌 가죽 제품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고 2011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소시에이트로 승진했다.

2014년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와 그녀의 연인이자 CEO였던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가 매출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미켈레도 구찌를 떠날 예정이었다.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2015년 1월 마르코 비자리가 새로운 구찌의 CEO로 선임되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진/알레산드로 미켈레_인스타그램]
[사진/알레산드로 미켈레_인스타그램]

CEO 마르코 비자리가 미켈레에게 프리다 지아니니가 제작하다 말았던 남성복 컬렉션을 재구성해 일주일 안에 패션쇼를 준비할 수 있는지 물었고 미켈레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르코 비자리는 미켈레에게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넘겨주려 한 것이었다. 마침내 미켈레는 ‘새로운 구찌: 비적합주의자, 낭만주의자, 지성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컬렉션을 발표했다.

사실상 무명 디자이너에 가까웠지만 대중들의 편견과 근심을 떨쳐내며 성공적으로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로 데뷔하게 된다. 과감한 패턴과 장식을 이용한 핸드백 등 미켈레만의 감성으로 대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구찌의 위상을 회복시키며 매출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미켈레 작품의 특징

[사진/Flickr]
[사진/Flickr]

미켈레는 첫 여성복 컬렉션 쇼에서 소박하고 지적이며 중성적인 느낌을 표현해냈다. 또한 더블 G 로고와 같은 상징적인 구찌의 클래식 제품들을 다시 선보이며 디오니소스 핸드백과 같은 상징적인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구찌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에서 그만의 젠더플루이드를 추구하며 구찌 자체를 포스트젠더리즘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또한, 미켈레는 구찌의 디자인에 극적인 르네상스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다.

2016년에는 GQ 올해의 남자 최우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9년에 들어서는 구찌의 메이크업 컬렉션을 다시 부활시켰다.

다양한 컬러감을 선보이며 내리막을 걷던 구찌를 부활시킨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 독보적인 커리어와 명성을 쌓으며 샤넬의 故 칼 라거펠트를 뛰어넘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 세계가 열광하는 명품 브랜드 구찌는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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