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고은 pro]

▶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 출생-사망 / 1833. 05. 07. ~ 1897. 04. 03.
▶ 국적 / 독일
▶ 활동 분야 /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등

다수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피아노곡, 합창곡 등 2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19세기 후반기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인 중 한 사람인 ‘요하네스 브람스’. 같은 시대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그를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3B로 칭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음악
18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는 집안이 대대로 음악과 관련되었기에 5살부터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면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7살부터는 ‘코셀’에게 피아노를, 음악 이론가인 ‘마르크스젠’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브람스는 마르크스젠에게서 작곡법과 음악론을 배우면서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한다. 11살이 되던 1844년, 브람스는 사적인 연주회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류 음악가들과의 만남
20살에는 당시 유명 바이올린 주자 ‘레메니’를 만나 함께 유럽 각국을 다니며 연주회를 열었다. 각국을 돌아다니다 하노버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을 만났고 연주 여행을 하며 ‘리스트’를 만나게 된다. 이때 ‘슈만’도 알게 되는데 슈만은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들은 뒤 그가 주재하는 <음악신보>에 ‘위대한 음악의 예언자 브람스 나타나다’라고 소개하며 관심을 일으켰다.

빈에서의 음악 활동
브람스는 1859년부터 1862년 가을까지 함부르크로 옮겨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합창곡을 작곡하며 지내다 1863년 빈에서의 지휘자로 초빙된다. 이때부터 빈에서 음악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1868년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썼다는 <독일 레퀴엠>으로 전 유럽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칸타타 <리날도>를 작곡했고 첫 현악 4중주, 세 번째 피아노 4중주, 또 가장 유명한 교향곡 제1번 등 여러 작품들을 완성하게 되었다. 1869년에는 <알토랩소디>, 1871년에는 <승리의 노래>를 작곡했다.

잇따른 여러 작품 발표
1872년 가을부터 1875년까지 빈 음악인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했다. 다음 해에는 <교향곡 제1번>을 초연한 후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1877년 <교향곡 제2번>이 완성되었고 1878년에는 <바이올린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표했다. 1883년에 <교향곡 제3번>, 1885년에 <교향곡 제4번>, 1890년까지 <피아노 협주곡 제2번>, <현악 5중주곡> 등을 작곡했다.

말년에도 이어진 작곡
1890년 브람스는 체력적인 한계와 창작력 쇠퇴로 결국 작곡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지만 클라리넷 연주자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듣고 다시 창작력과 영감을 회복해 말년까지 클라리넷이 중심이 되는 여러 실내악곡을 작곡했다. 그러다 브람스는 간암으로 몸이 눈에 띄게 쇠약해져 마침내 1897년 4월 3일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오페라를 제외한 성악의 전 장르에 곡을 남긴 ‘요하네스 브람스’. 낭만주의 음악을 바탕으로 고전주의의 형식에 따라 곡을 만들어 고전적 낭만주의자로 불리고 있다. 빈에서 음악가로서 당대 최고의 명예를 얻은 그의 작품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감명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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