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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이 압록강이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현도군 졸본 지방에서 건국하였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 드라마로도 유명한 ‘주몽’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물은즉, 하백의 딸 유화라 하는지라. 그녀는 어느날 수태하고 알을 낳았다. 그 알에서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고 나왔는데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하여 그를 주몽이라 이름 지었다.

 

주몽은 일곱 살이 되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이렇듯 주몽의 비범함 때문에 부여의 왕자들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게 되고,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세 사람과 함께 도망가 강가에 이르렀다. 추격병들이 그를 바짝 쫓고 있는 가운데 강에는 다리가 없어 건널 수 가 없었다. 이에 주몽은 강물에 고하여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추격병이 쫓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외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니 주몽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졸본천은 땅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천이 험하였다. 마침내 이 곳에 도읍하기로 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를 그의 성씨로 삼았다.

위 신화를 들여다보면 주몽은 대표적인 난생신화의 인물 중 한명이다. 알로 태어남으로써 비범함을 갖췄으며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의 아버지 하백은 물의 신이었다. 또 절체절명의 순간에 천제의 아들이라 외치며 심지어 동물들이 도와 준 것은 직접적으로 신의 아들임을 드러낸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려서부터 활을 잘 쐈다고 한 내용은 고구려가 활을 잘 다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고구려는 대부분 큰 산과 깊은 계곡으로 된 산악지대여서 농토가 부족했다. 때문에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주변국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2대 유리왕 때는 압록강 가의 국내성으로 천도했으며 5부족 연맹을 토대로 발전했다. 이 당시 중국 등 주변국 등은 고구려에 대해서 성품이 흉악하고 포악하여 노략질하기를 좋아했다는 표현을 했다.(삼국지) 그만큼 고구려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는 반증이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주몽(동명왕)이 부여 출신이었기 때문에 부여와 같은 제도가 많았다. 예를 들면 1책12법 등의 법률과 형수가 죽으면 동생이 아내로 받아드리는 형사취수제,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거행한 점과 연맹부족으로 역시 가와 하호가 있었던 점 등 문화적인 부분을 공유하였다. 후에 고구려는 철기로 넘어가면서 한 4군과 옥저, 동예 등을 정복해 연맹국가를 거쳐 고대국가로의 발전을 이루었다.

고구려는 부여의 형제 국가와 같다. 문화와 국가 체제도 많은 것을 가져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고구려는 부여와는 다르게 주몽이라는 강력한 왕권을 지닌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것이 연맹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여와의 차이점이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를 성립했다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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