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코로나19로 인해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우리는 다양한 위기를 인류애로 버텨왔기 때문이다. 특히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선행을 통해 이러한 희망의 크기를 키우는 선행자들이 있어 밝은 뉴스가 되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대구 키다리 아저씨’라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와 화제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자신과 한 '10년 익명 기부' 약속을 지키며 마지막 익명 기부금을 내놨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말이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와 거액을 전달하고 이내 자리를 뜨는 기부천사다.

23일 대구모금회에 따르면 키다리 아저씨가 전날 오후 전화를 걸어와 "시간이 되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그렇게 성사된 자리, 골목 한 식당에 부인과 함께 나타난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모금회 직원에게 5천4만원짜리 수표와 메모지가 든 봉투를 건넸다.

메모지에는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따뜻한 진심이 담겼다. "이번으로 익명 기부는 그만둘까 합니다. 저와의 약속 10년이 되었군요"라며 시작한 짧은 글에서 키다리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 나눔이 확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키다리)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며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모금회 직원들과 식사하며 나눔을 실천하게 된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경북에서 태어나 1960년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지만, 아버지를 잃고 일찍 가장이 돼 생업을 위해 직장을 다녔다. 결혼 후 단칸방에서 가정을 꾸리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수익의 3분의 1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작은 회사를 경영하며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기부 중단을 권유하는 직원이 있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수익 일부분을 떼어놓고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는 생각으로 나눔을 이어왔다.

그렇게 2012년 1월 처음 대구모금회를 찾아 익명으로 1억원을 전달함에 있어 그는 '10년 동안 익명 기부'를 자신과 약속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12월 그가 다시 1억2천여만원을 기부하자 대구공동모금회 직원들은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2018년까지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 1억2천여만원씩을 전했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쪼개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늘 자신을 부족하다 여기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작년 12월에는 2천여만원을 전달하며, 메모에 "나누다 보니 적어서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가족들의 그의 선행에 사실상 동참하며 힘을 부여했다. 부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기부할 때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난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해 물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자녀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손자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일상생활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고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전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올해 5천만원을 끝으로 익명 기부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10차례에 걸쳐 기부한 성금은 10억3천500여만원에 이른다. 그는 마지막 익명 기부를 하며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탄생해 함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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