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고은 수습]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 속에 이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두 강대국이 내놓은 서로를 철저히 배제하는 IT 관련 구상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게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은 5G 플랫폼 구축 등에서 중국 기업 제품을 배제하자는 취지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내놓고 동맹국들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클린 네트워크'는 5G 통신망과 모바일 앱, 해저 케이블, 클라우드 컴퓨터 등에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 제품을 배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중국 회사들을 배제한 '클린 네트워크' 구상 참여국이 50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도 이에 맞대응하는 성격의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 구상을 추진 중이다.

이렇듯 선제공격을 감행한 미국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국가들의 고심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적극적인 움직임 속에서 영국은 당초 입장을 번복하고 화웨이를 자국의 5G 구축 사업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브라질 정부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지지하면서 화웨이 배제 방침을 시사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서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하면서 두 나라와 모두 잘 지내야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내몰린 것. 한국은 두 구상 모두를 검토하고 있다며 신중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지만, 양국의 압박이 더 커지면 상당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이동통신사 중에서는 LG유플러스가 기지국 등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선 한반도 상황 등을 고려해 미국과의 관계에 소원할 수 없다. 게다가 한미동맹은 북핵문제 등 대부분 사안에 있어선 긴밀한 조율이 이뤄졌지만 '트럼프 리스크'로 예기치 않은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기 때문에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는 협상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로 지금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라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보인다. 또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두고도 이견을 노출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전직 미국 정보 분석가인 랜드연구소의 수 김은 "이 법(클린 네트워크)이 통과되면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며 "한국은 미국과의 안보 관계와 중국과의 무역 동반자 관계 사이에서 끼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록 당장 미국 정부가 군사 장비를 (추가로) 한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만일 한국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를 포함한다면 중국이 감시하거나 민감한 통신에 끼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에는 결국 안보냐 경제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질까. 아직까지 이 부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1월에 출범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반중(反中) 정책 기조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정책과 중국의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 구상.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에 많은 국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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