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윤수 수습]

▶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 출생-사망 / 1887. 11. 17. ~ 1976. 03. 24.
▶ 국적 / 영국
▶ 활동 분야 / 군사 지휘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등 연합군 사령관으로 뛰어난 활약을 한 ‘몽고메리’. 그는 아이젠하워 장군 밑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후 육군 원수로 진급했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1945년 5월 4일 독일 북부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두각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몽고메리는 샌드허스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육군 소위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보병 소대장으로 참가하였다. 프랑스 전선으로 파견된 그는 서부 전선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국경 전투에서 폐에 총알이 박히는 등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유능하고 다부진 지휘관이라는 명성을 얻은 몽고메리는 영국으로 귀환해 훈장을 받으며 대위로 승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몽고메리는 프랑스 전선의 영국원정군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후퇴하는 영국군을 지키기 위해 아라스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성과를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연합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한 뒤, 독일 침공에 대비해 영국 남동부 지역의 책임을 맡으면서 본토 육군 재건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반 
1942년 8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 제8군의 사령관으로 몽고메리를 임명했다. 당시 제8군은 독일에 패배해 이집트로 밀려나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임명된 몽고메리는 제8군을 재건하고 전력을 확보해 독일군을 격퇴시켰고 19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1943년 7월에는 연합군과 함께 시칠리아 침공에서 몽고메리는 사령관으로 지휘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했다.

전쟁 막바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총 지휘
몽고메리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 밑에서 일하면서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상륙군을 총지휘하여 작전을 성공시켰다. 이후 육군 원수로 진급한 뒤에는 영국군과 캐나다 제21군을 이끌고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5월 4일 뤼네부르크 황야에서 독일 북부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몽고메리는 영국군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SHAPE) 부사령관을 지냈고 군 은퇴 후에는 전쟁의 이론과 역사에 관한 여러 저술 활동을 펼치다 눈을 감았다.

군사 작전에 신중함을 중시해 공격하기 전에는 병사와 장비를 완벽하게 준비해놓았던 ‘몽고메리’. 이로 인해 연합군 사령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었지만 자신이 구성한 전략이 맞다는 믿음으로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그의 준비성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줬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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