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섹시한 액션의 표본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007’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섹시한 액션의 표본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윤수 수습
  • 승인 2020.12.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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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윤수 수습]

▶ 리언 플라이셔 (Leon Fleisher)
▶ 출생-사망 / 1930.8.25 ~ 2020.10.31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영화배우
▶ 주요작품 / 007 시리즈 1~6편, 장미의 이름(1986년), 언터처블(1987년), 더 록(1996년)
▶ 주요수상 / 골든글로브상 남자인기상(1972년), 남우조연상(1988년),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1988년)

첩보 영화 시리즈 '007'에서 1대 제임스 본드 역할을 연기한 영국의 원로 영화배우 숀 코너리는 특유의 진한 남성미를 바탕으로 액션 및 스릴러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찾은 연기의 길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닌 것과 달리 ‘숀 코너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 출신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교를 믿는 청소부였다. 코너리 부친의 가족은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왔다.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파운틴브리지 지역에서 태어난 숀 코너리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13세에 학교를 그만뒀고, 우유 배달과 벽돌공 등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위궤양으로 3년 만에 군을 나온 그는 다시 트럭 운전사와 안전요원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또한 에든버러 미술학교에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코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기도 하는 등 스타로서의 끼를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직업으로 착실히 생활을 이어가던 코너리는 좋은 기회를 만나 결국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

‘007’ 역대급 제임스 본드의 탄생 
1954년 단역으로 본격 연기 생활을 시작한 숀 코너리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1957년 BBC의 '블러드 머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무엇보다 코너리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든 것은 역시 '007 시리즈'였다. 그는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원제 Dr. No)에서 최초의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여러 명의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부인이 코너리의 매력이 섹시한 본드 역할과 어울린다고 추천했고, 결국 배역을 따냈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가운데 무려 7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섹시한 액션‘을 선보였고, 그 자체로 할리우드 배우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특히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역대 007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 명성의 영화배우 숀 코너리
코너리는 007 시리즈 이외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06년 공식 은퇴했다. 그는 그렇게 수 십 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과 2개의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상, 3개의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특히 '언터처블'에서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역할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스코틀랜드 홀리루드궁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에 대한 남다른 애정
007 시리즈의 원작자 플레밍은 처음에 숀 코너리가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작품을 본 뒤로는 이 같은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의 나중 소설에서 코너리가 그랬듯, 본드가 스코틀랜드 혈통을 일부 가진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실제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해왔다. 그는 2003년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스페인, 바하마, 뉴욕에서 지냈다. 그리고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그는 독립을 위해 표를 던져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뜨거운 인기 속에 세계적 배우의 길을 걷던 숀 코너리는 확고한 신념 속에 돌연 은퇴를 하게 된다. 그는 은퇴에 앞서 2005년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백치들같은 영화인들에 신물이 난다"며 "내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마피아와 같은 제의가 아니라면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이후 '인디아나 존스4',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작품의 출연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후문.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던 숀 코너리는 2020년 10월 31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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