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누군가의 절박함이 담긴 청원. 매일 수많은 청원이 올라오지만 그 중 공론화 되는 비율은 극히 드물다. 우리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조명 받지 못한 소외된 청원을 개봉해 빛을 밝힌다. 

청원(청원시작 2020-09-08 청원마감 2020-10-08)
- 도서정가제 개정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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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문화/예술/체육/언론

청원내용 전문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온라인 서점의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부터 중·소규모의 서점과 출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개정된 제도입니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isbn 발급을 근거로 수많은 전자출판물들이 종이책과 같은 기준으로 규제되고 있습니다.

전자출판물과 디지털 콘텐츠는 현행 도서정가제에서 반드시 분리되어야 합니다.

1. 종이책과 다른 전자출판물, 디지털 콘텐츠 고유의 특성을 고려해주십시오.
전자책은 종이책과 달리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합니다. 종이책처럼 중고 거래가 불가능하단 뜻이죠. 또한 전자책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플랫폼이 사업을 접는다면 이제까지 구매한 책을 열람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DRM 때문에 구매한 플랫폼의 뷰어가 없으면 열람할 수 없거든요. 실제 사례로도 존재하죠. 그래서 전자책 독자들은 구매하더라도 완전 소유가 아닌 영구 대여일 뿐이라고 자조합니다.

이렇듯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는데 장르 문학을 제외한 전자책 가격이 그렇게 저렴한 편도 아닙니다. <도서정가제 적용 등 전자책 대여 관련 정책개발 연구> (한국출판컨텐츠·문화체육관광부, 2018)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 가격의 7~80%로 저렴한 편이 아닙니다. 미국,영국의 경우 전자책 가격이 종이책의 50~60% 정도라고 하더군요. 미국 킨들 전자책 베스트 셀러 리스트의 평균 전자책 판매는 8천 원 이하라네요. 국민소득은 우리가 훨씬 낮은데도 전자책 가격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국내가 더 비싼 상황입니다.

전자책의 한계 비용이 0이란 사실도 종이책과 가격 정책을 분리해야하는 시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계 비용이 0이면 가격 할인 마케팅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2. 동네 서점 보호 취지와 어긋난 규제입니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규제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동네 서점에 발걸음 할까요? 웹소설, 웹툰의 경쟁자는 넷플릭스, 유튜브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바일 기기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동네 서점을 대체재로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전자책 중 "일반"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 장르 문학 대부분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지 않아요. 오디오북 역시 현실적으로 동네 서점에서 판매하기 힘듭니다. 이들은 동네 서점에서 팔 수 없는 상품입니다. 동네 서점의 가격 경쟁 대상이 아니니 도서정가제 규제의 취지와 어긋나게 됩니다.

한편, 이에 맞서는 출판계가 내놓은 명분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출판계는 웹툰ㆍ웹소설 역시 만화나 소설로 온라인 플랫폼에 공개된 것일 뿐, 본질적으로 출판물이란 성격은 유지되는 ‘확장된 출판시장’인 만큼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는 과도하다고 합니다. 결국 실질은 상관없이 '출판'이라는 미명 아래 디지털 콘텐츠 업계를 출판계의 발 아래에 놓고 싶어하는 아집으로 읽힙니다.

isbn 발급 여부를 근거로 면세 혜택을 원하지만 동시에 규제는 안 받으려 한다는 주장 역시 정당성이 부족합니다. 부가가치 면세 대상 중 가격 규제를 받는 것은 오직 책뿐입니다. 그 역시도 규제의 목적이 아니라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죠. "웹툰·웹소설 시장이 수천억원대로 커지고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수천억원대로 성장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격을 규제하는 나라였습니까?

부디 종이책과 전자출판물 시장을 분리해주십시오. 그리고 출판계 인사들로만 이루어진 단체가 아닌 전자출판물만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그 권한을 주세요.

도서정가제 국민 청원은 웹소설, 웹툰, 전자책 독자들의 주도 아래 20만명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인지한 정부는 이를 반영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지만 언론에서 보도된 민관협의체와 16차례 합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바뀐 것은 정가 표시 의무 완화가 전부였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던 도서정가제 편입 유예나 대책 마련이 아닌, "정가를 표시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민관협의체가 내놓은 결론입니다. 전자출판물 업계는 도서정가제 개정 합의안 논의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증거죠. 실제로 민관협의체에 웹툰, 웹소설 업계가 참여한 것은 2019년 12월 19일 이후이며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회의가 미뤄졌다고 합니다.

국민이 뜻을 모아 간신히 만든 자리를 출판계와 동네 서점이 갈취했습니다. 웹툰, 웹소설 정가 표시 의무를 완화해줄테니 이 정도면 된 것 아니냐고 생색냅니다. 정부가 약속한 것이 웹소설, 웹툰의 정가 표시 의무 완화였습니까?

사실상 출판계만을 대변하는 민관협의체는 국민들이 가장 원했던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여부 논의를 3년 뒤로 미루어 우리를 기만했습니다. 20만명의 존재를 지우고, 우롱하고, 묵살했습니다.

포털 사이트를 연일 도배하는 도서정가제 기사들은 전자출판물 이슈는 다루지 않습니다. 모든 기사와 칼럼이 동네 서점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우리를 지운 자리에 왜곡된 논의를 덧씌워 국민을 돈에 눈 먼, 천박하고도 잡스러운 개, 돼지로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유통 구조 개선에 실패하여 그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진실은 쏙 빼놓습니다. 그간 만족스러우셨습니까?

국민 역시 무분별한 할인이 시장을 망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전자출판물의 무분별한 할인이 아니라 종이책보다 유연한 가격 할인 마케팅을 허용해달라는 것입니다. 종이책 시장처럼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에 동네 서점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취재결과>> 청원 UNBOXING_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왈(曰)

“출판산업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를 강화하거나 최소 유지하는 방향으로 원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책값이 비싸고 할인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출판생태계 육성이라는 취지를 잘 살려야 하는 만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의견과 국민들의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개정 시한인 11월 20일 이전까지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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