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 자연 상태의 돌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깨서 도구로 사용했던 구석기. 구석기 시대의 그 돌을 ‘갈아서 사용한다.’ 는 ‘가공’의 개념이 생기기까지 무려 70만 년 정도 걸렸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갓난아기도 알아낼 것 같은 사소한 것이지만, 이 작은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단순히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생산’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이렇게 ‘가공하여 만든 돌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를 신(新신)석기 시대라 한다.

도구를 생산한다는 개념이 생기고 신석기 사람들은 먹을거리 역시 생산한다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이동을 하던 중 자신들이 먹고 버린 채집물의 씨앗이 싹을 트는 것을 ‘발견’했고 그 것이 성장하여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을 기다리면 그 채집물을 또 채집하기 위해 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신석기 사람들은 구석기 사람들처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게 되어 정착을 하게 되었고, 바야흐로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냥과 채집으로만 연명 할 수 있었던 시기에서 농경으로 인한 생산과 축적을 할 수 있는 시기로 엄청난 생활의 변화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이 변화를 가리켜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제주도에서 약 기원전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발견되어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한 조, 피, 수수 등의 잡곡의 탄화된 화석들이 황해 봉산 지탑리, 평양 남경 등에서 발견되어 농경을 하고 살았다는 것 역시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구석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석기 사람들은 이렇게 농경생활을 하며 ‘정착’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진정한 우리의 선조라고 할 수 있다.

점점 따뜻해지는 기후로 인해 농경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비중이 줄기는 했지만 신석기 시대에도 여전히 사냥과 채집은 중요한 식량을 얻는 수단이었다. 이들은 특히 굴이나 홍합 등의 조개류를 많이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개를 먹고 버린 ‘조개무덤(패총)’이 부산 등에서 발견됐으며 먹은 조개의 껍질은 장식으로 이용하는 등의 유물도 발견이 되었다.

도구가 발달하고 농경이 시작되자 막집이나 바위 밑에서 지내던 구석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주거환경 역시 개선이 되었다. 신석기 사람들은 원형 모양의 ‘움집’을 짓고 살았는데 화덕과 저장고, 출입문등 주거의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어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의 형태를 충족시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석기 시대의 사회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이 한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따라서 모계중심의 사회였으며 초기에는 타 부족을 배척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신석기 후기에 들어서는 족외혼 등의 부족 간 교류문화가 생겼다. 신석기 시대는 모계중심의 사회 이기는 했지만, 아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없이 평등사회로 경험과 지혜가 많은 사람이 부족을 이끌어갔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자연에 따른 식량의 양이 차이가 나자 신석기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구석기 시대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그래서 풍요와 안전을 비는 원시적인 신앙심이 더욱 깊게 되었는데 태양과 물 등 자연 현상과 자연물을 숭상하는 ‘애니미즘’, 자신의 부족을 특정 동물과 결부시켜 그를 숭배하는 ‘토테미즘’. 무당과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 조상 숭배 사상 등이 이 때 형성되었다. 특히 단군신화로 알려진 곰과 호랑이의 일화는 곰과 호랑이를 믿는 부족의 결합을 뜻하는 것으로 원시신앙은 한 부족의 성격과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이었다.

깬 돌을 갈기 시작한 위대한 한 걸음으로 인해 우리는 현재 PC나 스마트 폰으로 이 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70만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보내고 ‘생산’의 개념을 깨닫게 되었던 신석기. 농경으로의 진일보는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동안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이에 우리도 역시 선조들의 위대한 한 걸음을 잊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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